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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 휴일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보는데,

내용중에 사건 하나가 궁금한 것이 있어 알아봤습니다.

 

일본 쇼와시대에 불특정 다수를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독극물 협박사건

모리나가 사건을 모티브로 구성한 실제 있었던 내용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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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내용의 범죄와, 이를 모방한 모방범죄까지 다루는 책도 많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 서점에서 미스테리 부문 1위를 차지한 추리소설들이 대부분 이러한 범죄를 대상으로 한 작품입니다.

 

 

 

오늘 알려드릴 내용은

TV와 소설 작품의 소재가 된 ‘글리코ㆍ모리나가 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결론은

1984년 거액을 요구하며 청산가리를 넣은 과자를 점포 판매대에 진열한 사건으로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2000년 2월 공소시효가 만료됐습니다.

 

 

 

   글리코ㆍ모리나가      사건   

 

1984년과 1985년에 오사카시와 고베시를 무대로 식품회사를 표적으로 한 일련의 기업 협박 사건.

에자키 글리코란?

에자키 리이치가 1929년 2월 22일에 창립한 오사카에 본사를 둔 식료품 회사

 

1978년 8월 17일 사건 발생 6년 전의 글리 코사 상무 앞으로 한 테이프가 배달됩니다.

1시간 분량의 테이프의 내용은

자신을 부락쿠민 해방동맹 간부라고 소개하는 중년 남성의 목소리로 과격파 학생들이 글리코 사장 유괴,

글리코 본사 방화, 청산가리 과자 배포 등의 범행을 할 것이며, 글리코에게 30억 원을 요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 하며 이런 범행을 막고 싶다면 30억 원 요구 금액을 17억 5천만 원으로 감액해줄 테니 응한다면

지정한 방법으로 신문광고를 내라고 합니다. 이에, 글리코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글리코 사장 유괴, 글리코 본사 방화, 청산가리 과자 배포 등

연락으로 신문광고를 택하는 것 등 후에 글리코에 범행을 예고하는 내용이습니다.

 

그리고 이 테이프가 배달되기 2년 전부터 에자키 글리코 상무 자택으로 황건족이라는 인물이

편지와 전화로 협박이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수사본부는 이 테이프를 보낸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성문 감정을 하며 수사하였지만 범인을 잡지 못합니다.

 

그 후 

마루다이식품,  모리나가 제과, 하우스식품, 후지야, 스루가야 등 식품기업을 상대로 차례차례 협박합니다.

 

여기서 잠깐!!

오늘 언급된 "모리나가"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모리나가 제과      (森永製菓)   

 

본사는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5초메 33-1에 있으며, 

공장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쓰루미구 등 5곳에 두고 있습니다. 

 

1910년에 주식회사 모리나가 상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1912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모리나가 제과 주식회사로 변경되었습니다.

 

하이츄를 비롯하여 이 회사의 히트작이 많지만 가장 유명한 제품을 하나 꼽자면 모리나가 밀크 캬라멜이 있습니다.

1899년부터 캐러멜을 생산했으며, 현재 상품은 1913년부터 생산한 근 백년 세월을 담은 상품입니다.

 

한국에서도 일제강점기 시기인 1922년경부터 모리나가 밀크 캬라멜이 시판되기 시작하였고

그 다음에 모리나가 마리 비스킷을 비롯한 모리나가 제품들을 들여와 판매, 광고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시절 문학작품에서 밀크 캬라멜의 밀크를 일본어식으로 읽은 '미루꾸'는 우유가 아니라 캬라멜을 의미합니다.

 

 

 

사진을 보고 오리온이 이걸 베낀 건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엄연한 기술제휴 상품입니다.

오히려 제품 홍보를 위해 발매 초기에는 제품과 광고에 일본 모리나가와 기술제휴라는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집어넣었으며, 1979년부터 생산한 40년 연륜이 쌓인 귀한 몸이며, 참고로 오리온 초코파이는 1973년부터...

 

 

 

모리나가 캬라멜의 속포장지에는 일본의 문화재 소개, 각종 칼럼 등 여러가지 글들이 적혀 있으며,

과즙 음료를 넥타라고 부르는 것도 모리나가가 원조입니다.

 

참고로 김혜수가 주연한 드라마 국희에서 등장하는 모리나가가 바로 이 회사.

또한 오스트리아산 유명 캔디인 페츠의 일본 내 공식 유통사이기도 합니다.

창업주인 모리나가 가문은 아베 신조의 아내 아베 아키에의 외가이기도 합니다. (에~잇 여기서 울화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모리나가는 전투식량을 생산했고,

모리나가 도시락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국책식량이라고 광고를 했습니다.

 

형태는 한국군의 특전식량과 비슷한 모양이며,

모리나가 밀크 캬라멜과 모리나가 '드롭스' 캔디도 구 일본군에게 전투식량 대용으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한반도에도 공장을 만들어서 건빵을 일본군에 납품했고,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 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 위원회가 일제 강점기 강제 동원에 관여했던 일본 전범기업으로 확정했습니다.

그래서 비판과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모리나가 유업      (森永乳業)   

 

위 회사의 형제회사. 소재지는 같지만 건물은 다릅니다.

1955년 분유에 비소가 불순물로 들어가 영아 130명 이상이 죽은

'모리나가 비소 밀크 사건'이라는 흑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80년대에는 일본 굴지의 제과업체인 에자키 글리코社와 함께,

위에서 언급한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라는 영구 미제의 납치/협박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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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볼셰비키혁명 이후 70여 년간 모든 권력을 독점해온 소련의 정당.

 1991년 소련 연방과 소련 공산당의 붕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수립된 후 1925년부터 다시 전연방공산당으로 불리다가

1951년 소련공산당으로 개칭되었다.

 

거의 70년동안 소련은 일당국가를 지향하는 단일체로서 건재하였고,

공산당은 마치 자식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엄한 아버지처럼 국가를 지배하였다. 

 

지프 스탈린(1879-1953)은 1924년부터 1953년까지 통치하였는데, 

강력한 국제 안보 기구와 거대한 중앙계획 경제를 건설하였다. 

 

그에게 반대하는 어떤 이라도 사형시켰다고 알려지는 그는  나찌 독일을 패배시키는데  일조했고, 

서유럽과 소련 사이의 완충지대로서 동유럽에 국가들을 건설했다. 

 

그의 후계자인 니키타 흐루시 초프(1894-1971)는  1953년부터   1964년까지  통치했고,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1906-1982)는 1964년부터 죽을때까지 소련을  통치했다. 

 

흐루시초프와 브레즈네프는 권력이 공산당과 공산당 지도자에게 집중되어있는 독재 체제를 물려받았다. 

영자는 막강한 적군에 의해 뒷받침되는 전능한 소련이라는 스탈린의 견해에 공감 했다. 

양자는 내부적 불만을 같은 방법으로 억압했다. 

 

흐루시초프는 1956년의 헝가리 사태를 분쇄했고, 

브레즈네프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그런 방식으로 다루었던 것이다.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 1954.1.14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다. 마릴린 먼로(마를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의 만남은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두 세계’의 절묘한 결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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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브레즈네프는 아프가니스탄에 같은 전술을 시도하나, 적군이 힌두 쿠시 산맥에 숨어있는 회교도 게릴라와 벌인 전투는 미국이 베트남의 정글에서 겪었던  경험과 마찬가지로 곧  교착상태에 봉착하게 되었다.  

국내정치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소련내부의 기존 질서가 난파하기 시작한 원인이 되었다. 

 

1985년, 브레즈네프가 죽은지 3년후에, 새로운  개혁적 성향을 지닌 지도자가 권좌에 올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1931- )는 소련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 트로이카(재건)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공산 국가는 이미 부스러지기 시작하였고,

오직 전체주의가 뒷받침한 철의 유대만이 소련의 각 조각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르바쵸프가 이  유대를 풀어놓자, 15개의  공화국은 각자 더 많은 자치권을 달라고 외쳐댔고, 

발틱해  연안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보리스 옐친(1931-)은  1991년 6월에 넓은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소련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그의 공화 국, 러시아에거 보다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였다.

 

 

 

중국의 4대 악녀

1. 은의 달기  ​ [주지육림]의 주인공 달기 주 왕과 달기: 중국에는 4대 악녀와 4대 미녀가 있다고 하는데 ‘달기’는 그 4대 악녀 중 한 사람이다. ​ ‘달기’에 관한 기본 사료로서는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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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19일,

일단의 강경파 공산주의자 집단이 고르바쵸프를 구금하고 브레즈네프 식의 국가로 복괴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들에게 놀랍게도, 옐친은 그들에 게 대항하였으며, 그들의 쿠데타는 며칠만에 끝나게 되었다. 

비록 옐친이 고르바초프를 구출해 내는데 성공했지만, 소련  연방의 통치 구조는 완전히 와해되었다는 사실은 

모든이에게 명백해졌다. 


고르바초프는 각 공화국들을  서로 모으기를 몇개월간  시도하였으나,

결국 소련  공산당과 소련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1991년 12월 23일,  75년간의 소련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친숙한 붉은 깃발은

지막으로 내려지고, 새로운 15개의 독립  공화국들의 15개의 깃발이 그를 대신하였다. 

 

1992년 1월 1일, 소련 연방과 소련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그 존재가 끝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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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는 조선초기(朝鮮初期)에 이미 ‘팔도(八道)’라는 행정구역이 있어

그 후 약 5백 년간 이 제도가 존속(存續)되어왔다. 

 

조선 태종 때 확정된

경기(京畿), 충청(忠淸), 전라(全羅), 경상(慶尙), 강원(江原), 황해(黃海), 평안(平安), 함경(咸鏡) 등

전국의 지방행정구역.
 
조선 개국 초에는 고려 말의 행정구역을 답습하여 경기, 양광도(楊廣道:충청), 전라, 경상, 교주강원(交州江原), 서해(西海:황해) 및 서북면(西北面:평안), 동북면(東北面:함경)의 6도 2면을 두었다가 1398년(태조 7)까지 양광도를 충청, 교주강원도를 강원, 서해도를 풍해도(豊海道)로 고쳐 이들 행정구역을 일부 조정하여 6도 2면의 체제를 유지하였다.

그후 1413(태종 13)~16년에 풍해도를 황해, 서북면을 평안, 동북면을 함길도(咸吉道)로 고치고 함길도를 마지막으로 관찰사(觀察使)를 둠으로써 비로소 8도의 지방행정구역 체제가 갖추어졌다.

 

이 체제는 1896년(건양 1) 13도 체제로 개편되기까지 일부 구역의 변경 및 명칭의 개칭 등은 다소 있었으나 8도체제는 근 500년간 지방행정구역의 최상위 단위로서 존속되어 왔다.

각도의 명칭은 유력한 도시의 지명 앞 글자를 따서 지어졌는데,
 
함경도(咸鏡道)는 '함흥(咸興)'과 '경성(鏡城)'
평안도(平安道)는 '평양(平壤)'과 '안주(安州)'
황해도(黃海道)는 '황주(黃州)'와 '해주(海州)'
강원도(江原道)는 '강릉(江陵)'과 '원주(原州)'
충청도(忠淸道)는 '충주(忠州)'와 '청주(淸州)'
경상도(慶尙道)는 '경주(慶州)'와 '상주(尙州)'
전라도(全羅道)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글자를 따서 지어졌으며,

경기도(京畿道)는 지명의 앞 글자가 아니라 당나라 시대에 왕도의 주변지역을 '경현(京縣,赤縣)'과 '기현(畿縣)'으로 나누어 통치하였던 데서 유래한것으로, '경(京)' 은 천자(天子)가 도읍한 '경사(京師)' 를 '기(畿)' 는 천자 거주지인 '왕성(王城)을 중심으로 사방 5백리 이내의 땅' 을 의미 한다. 

조선 영조 때의 실학자(地理學者)인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 1690?)"택리지"에서

우리나라 산세와 위치를 논하고 있으며, 팔도의 위치와 그 역사적 배경을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 경상도는 변한(弁韓) 진한(辰韓)의 땅이고,  함경 평안 황해도는 고조선(古朝鮮) 고구려(高句麗),

강원도는 예맥(濊貊)의 땅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팔도라고는 하지만 원래 경기에는 도() 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정칙(正則)이고 

경기도에는 이칭(異稱)이 없다.


나머지 7도에 대한 이칭과 기준은 다음과 같다.

 

호서(湖西)는 충청도로서 충북 제천 의림지호(義林池湖)의 서쪽이라는 뜻이고,


호남(湖南)은 전라도로서 전북 김제 벽골제호(碧骨堤湖)의 남쪽이라는 뜻이며,


영남(嶺南)은 경상도로서 조령(鳥嶺) 죽령(竹嶺)의 남쪽을 말함이요,


강원도를 영동(嶺東) 관동(關東)이라 함은 대관령 동쪽이라는 뜻이고,


해서(海西)는 황해도로서 경기해의 서쪽이라는 뜻이요,


관북(關北)은 함경도로서 철령관(鐵嶺關)의 북쪽을 말함이요,


관서(關西)는 평안도로서 철령관의 서쪽이라는 뜻이다


 

조선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정도전(鄭道傳)에게, 

조선팔도(朝鮮八道) 사람을 평하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정도전은,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이며,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이고,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이며,

경상도는 태산준령(泰山峻嶺)이고,


강원도는 암하노불(岩下老佛)이며,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이고,


평안도는 산림맹호(山林猛虎) 입니다. 라고 평하였다 한다.


 이 말을 풀어보면,

경기도는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고,

충청도는 맑은 바람속 밝은 달과 같으며,

전라도는 바람 앞의 가는 버들과 같으며,

경상도는 큰 산의 험한 고개와 같으며,

강원도는 바위 아래 늙은 부처님과 같고,

황해도는 봄 물결에 돌을 던지는 듯하고,

평안도는 숲 속의 사나운 호랑이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계의 출신지인 함경도에 대해서는 평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조는 아무 말 이라도 좋으니 어서 말하라고 재촉하였다.

정도전은 머뭇거리며 “함경도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이옵니다”라고 아뢰었고,

태조 이성계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이 벌개졌다고 하는데 눈치 빠른 정도전이 이어 말하길

“그러하오나 함경도는 또한 석전경우(石田耕牛)올시다”하니,  그제야 용안에 희색이 만연해졌다고 한다.


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 밭에서 싸우는 개처럼 맹렬하고 악착스럽다는 뜻으로 천박하다는 의미를 내포하며, 석전경우(石田耕牛)란 자갈밭을 가는 소라는 뜻으로 부지런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라는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편, 조선 정조 때 대사간. 도승지.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규장각 학사(學士) 석재(碩齋) 윤행임(尹行恁: 1762-1801)

어느 날 정조 임금과 각도 사람들의 성격에 관하여 한담소일(閑談消日)할 때

8도의 인물을 평한 사자평(四字評)이 전해 내려온다.


내용은 위에 열거한 정도전의 평과 같다.

아마 이를 인용한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의 지리참모로 조선에 왔던 두사충(杜師忠)의 사위인 나학천이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중국 남경의 건주(建州) 출신으로 장인과 함께 조선에 귀화한 인물로


"나학천비결(羅鶴天秘訣)"에서 조선 팔도의 인물평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1) 함경도 사람은 우직지협(愚直知夾) / 사람은 우직하지만 지혜를 가졌다.


2) 평안도 사람은 견강용예(堅剛勇銳) / 의지가 강하고 용감하며 날쌔다.


3) 황해도 사람은 우준무실(愚蠢無實) / 느리고 어리석어 옹골차지 않다.


4) 경기도 사람은 선용후유(先勇後柔) / 앞에는 억세고 뒤로는 부드럽다.


5) 강원도 사람은 칩복지단(蟄伏知短) / 자기 거처에 가만히 있고 아는 것이 부족하다.


6) 충청도 사람은 부경용호(浮輕勇豪) / 행동이 경솔하지만 용맹스럽다.


7) 경상도 사람은 우순질신(愚順質信) / 어리석고 순하고 질박하지만 참된 기질이 있다.


8) 전라도 사람은 사교경예(詐巧輕藝) / 속임이 많고 교활하고 가벼우나 예술성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의 입지조건으로서  지리(地理), 생리(生利), 인심(人心), 산수(山水) 4가지를 들었다.


무엇으로서 인심을 말할 것인가?

공자께서 "마을의 풍속이 착하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아름다운 곳을 가려서 살지 아니하면 어찌 지혜롭다 하리오." 하시었고,

옛날.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이나 집을 옮긴 것(孟母三遷)

아들을 훌륭하게 가르치고자 함이었다.


사람이 살 고장을 찾을 때에 그 착한 풍속을 가리지 않으면

비단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자손에게도 해가 있어서

반드시 좋지 못한 풍속이 스며들 우려가 있다. 그러니

살 곳을 가리는데, 그 땅의 세상 풍속을 보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팔도 가운데,  평안도 인심은 순후(醇厚)하여서 제일이요,

다음은 질실(質實)한 경상도 풍속이다.


함경도는

오랑캐와 접경하여 백성이 모두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산수가 험악한 까닭으로 백성들이 거의가 사납고 모질다.


강원도는 산골짜기 백성으로 몹시 불손하고,

전라도는 오로지 교활함을 숭상하여 그른 일에 움직이기 쉽다.


경기도는 도성 밖의 야읍(野邑)은 백성들의 재물이 시들어 쇠하였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에만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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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德山面) 덕숭산(德崇山)에 있는 사찰.

▣ 수덕사의 여승, 스님 일엽

▣ 가수 송춘희와  노래 수덕사의 여승

 

일당 김태신 스님께서는 2014년 12월 25일

새벽 1시에 향년 93세로 원적에 드셨습니다.

 

일당 스님은 1922년 9월 일본의 도쿄에서, <오다 세이죠>라는 세계적인 은행가 아들과

당시 유학중이던 한국의 신여성 김일엽 사이에 태어나, 한일근대사의 굴곡과 오욕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기구한 운명의 소유자로 꼽힙니다.

 

오다 세이조<일당스님의 부친>는 아버지를 은행 총재로 둔, 

일본최고 명문가의 아들이며, 당시 규슈제국대 학생이었습니다.

 

남자 부모님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아픔을 겪는데, 

이때 둘 사이에 아들<일당>이 하나 태어납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 친구의 양자로 입적되어 자라나게 되며,

이 사람이 한국과 일본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동양화가 일당<일엽스님의 아들> 스님이며 이름이 “김태신”이다.

 

일당스님은 지금도, 김천의 직지사에서 활동 중이며, 해방직후 김일성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김일성 종합대학에 지금도 걸려있다 합니다.

 

 

당시 그 일로해서 조총련계로 오해받아, 작품 활동에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오다 세이조와의사랑도 아픔으로 겪은 그녀는
곧, 일본에서 돌아와 수덕사의 여승이 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이 세파에 으스러지는 아픔을 이겨내고,

또 다른 참 인생의 행로를 불자의 길로 선택한 것입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린 아들이 수덕사를 찾아 왔는데 불자가 되었으니,

“속세에 맺어진 너와나의 모자인연은 속세에서 끝났으므로 더 이상 나를 어머니라 부르지 말라”

하며 모질게도 모자의 정을 끊고자 이역만리 찾아온 어린자식을 절 밖에 재웠다 합니다.

 

이때 김일엽의 절친한 친구인 나혜석이 수덕사 밖에 있는 수덕여관에서 같이 지내며

어머니 처럼 자신의 젖가슴도 만져보게 하고 그림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때 흘리지 못한 눈물이, 가슴에 쌓여 해탈로 녹아내렸을까 ?

비구니로써 그의 인생이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길 만큼 성공적인 것은 우연이 절대 아닙니다.

 

가수이자 음성 포교사인 “수덕사의 여승”의 주인공 송춘희씨를 기념하기위하여 절 앞에 있는 주차장에

노래 기념비를 세웠으나 2-3일후 수덕사의 스님들이, 이 기념비를 무너뜨렸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이며 문장가인 나혜석이 그 한명이고, 나머지 한명은 시인으로 유명한 김일엽이다. 

이 신여성 세 사람은 조선사회 남존여비의 실체가 그대로 존재했던 시기에 시대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불꽃처럼 살며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여인들입니다.

 

그 연유는 아마도 노래의 가사 내용이 스님들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다 해도 중생을 구제하고, 아픔을 함께 해야하는 스님들께서 속세의 작은 정표하나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하는 처사가 못내 아쉽기만 한 것은 내가 불자가 아니어서 그런걸까 ?

 

 

일엽 스님께서 살아계셨다면 기념비는 어찌 되었을지 자못 궁금하기만 합니다.

무심히 부르고 흘러버릴 대중가요일 뿐인 “수덕사의 여승”에 이렇게 딴지를 걸어 보는건,

이 노래가 만들어진 시기가 60년대이니, 이때엔 일엽스님께서 수덕사에 살아 계실 때입니다.

 

이 글에 인용된 사실적 기록들은 일엽 스님의 아들 일당스님 (김태신)이

최근 발표한 자전소설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에서 발췌했음을 밝혀둡니다.

 

 

수덕사의 여승/김문응 작/한동훈 곡 (66년)

인적없는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1966년도에 나온 송춘희(1937~ )의 노래 ‘수덕사의 여승’은 대단히 히트하여
10년의 무명가수인 송춘희를 그해 10대 가수에 올려 놓았습니다.
송춘희의 출세곡이자 평생 간판곡이 되었습니다.

  

수덕사의 여승, 스님 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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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직업들이 있었던거 기억하나요?
 
1. 물장수 -  예전에는 높은지대에는 수도가 공급되지않아 생활용수를 직접 물통에 담아와야 했기에 

사람을 사서 물을 공급받았다. 그러나 수도관이 생기고 물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어서 결국 사라졌다.
 
2. 굴뚝청소원 - 아파트와 주택이 생기고 굴뚝이 있는 집이 사라져 가면서 이 직업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3. 전화교환원 - 옛날 전화를 해서 전화를 할 상대방과 이어주는 역활을 했던 사람.

그러나 지금 이 역시도 기술의 발전으로 사라졌다. 

 

4. 항법사 -  항공기의 위치 등을 측정하는 , 항공상의 자료를 산출하는 사람. 허나 기술의 발전으로 쇠퇴되었다.
 
5. 타자원 - 타자를 대신 쳐주던 사람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역시 쇠퇴되었다.
 
6. 극장 간판 그리는 사람 - 컴퓨터로 대형실사출력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9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7. 칼을 가는 사람 – 시대가 변하면서 칼이 아주 싸져서 결국 쇠퇴했다.
 
8. 얼음장수 – 얼음을 직접 얼릴 수 있게 되면서 사라졌다.
 
9. 여자 차장 - 버스에 여자 차장이 있었는데 요새는 카드로 하거나 돈을 내기 때문에 사라졌다.

10. 식자공 – 활자로 문서를 인쇄하는 사람으로, 오늘날은 컴퓨터로 문서 작성 및 편집을 할 수 있고 프린터

기계를 이용하여 책을 인쇄할 수 있는데다 복사기를 이용하여 복사를 할 수 있으므로 결국 쇠퇴했다.
 
11. 인력거맨 – 사람의 힘으로 사람을 태워 나르는 사람으로, 80년대 이후 자동차가 생겨나면서 느린 

인력거는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결국은 쇠퇴했다.
 
12. 전차 운전사 – 전차를 운전하는 사람으로 지하철과 기차가 발달함에 따라 점점 사라졌다.
 
13. 그 밖의 3D 직업 등… : 고물상, 엿장수, 짚신장수, 나무꾼, 뱃사공, 땜장이, 대장장이, 아이스깨기 장사꾼, 벼룩잡는 사람, 연탄 배달원, 석유 배달원, 방물장수, 넝마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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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매일 매일 유익하고 알차고 궁금한 정보로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모모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내용은 예전에는 대중교통(버스)을 이용하기 위해서 많이 사용하던 동전 모양의

주조물인데, 일반인은 토큰, 학생들은 회수권을 사용 했었습니다.

물론, 학생용 토큰도 있었으며, 지역에 따라 모양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습니다.

 

토큰의 생성시기

※ 버스 토큰-1977년 12월 1일 시작되었으며, 교통카드가 도입되는 1999년까지 사용

토큰은 버스 요금이나 자동판매기 등에 사용하기 위하여 발행한 동전 모양의 주조물을 토큰이라 했으며, 1977년 12월 1일,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내버스에 토큰제를 실시했었습니다.

그러나 토큰은 교통카드가 사용되기 시작한 1999년부터 없어졌습니다.

 

토큰의 형태는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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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서는 우리나라에서 1900년에 최초로 발행됐다.

1차적으로 근대 통신 수단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사진과 사연을 통해 당시 생활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일제는 근대 제국주의의 표상으로 엽서를 발행했고 이를 일본의 식민통치를 왜곡․선전하는 데 사용했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독립운동가 가운데서도 엽서를 사용해 사연과 안부를 전하는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선조들의 생활상과 관제엽서에 숨겨진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을 기억할 수 있다. 

우측의 글 내용은 '알레베크 법국(프랑스) 교사 서울 대한'이다 프랑스교사가 대한민국 서울에 온 것을 기념하는 엽서이다.   
프랑스 교사가 대한제국 서울에 온 걸 기념 하는 이 엽서는 2종류를 발행 한듯 하다. 
송도유원지의 옛 모습이다.
지금의 인천시 자유공원이다. 인천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근대공원이 만들어진 도시다. 1888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공원인 “서공원”이 문을 열었는데, 1897년 설립된 “서울 파고다공원”보다 9년이나 앞 선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 공원을 처음에는 “각국공원” 만국공원“이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서공원” 광복 후 에는 “만국공원” 그리고 1957년 맥아더장군 동상 건립 후 지금의 “자유공원”이름으로 불려진다. 
엽서-1934년 통영우편국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가는 엽서다. 미국을 경유해서 가자면 몇달은 족히 걸렸을 듯.. 미국행(米國行)이라 찍여 있다.
 개성 인삼밭
  툇마루에서 한가롭게 장기 두는 모습이 담긴 엽서, 
 신세계 백화점 기념 엽서
  아리랑 엽서
 1903년 파리로 보낸 엽서 한 장
일제강점기 경성-대련간 최초의 비행우편엽서
조선총독부 시정 7주년 기념엽서
서재필 선생의 딸이 미국에서 보내온 엽서
서재필 선생의 딸이 보낸 엽서의 뒷면
독립운동가 안창호 선생 앞으로 온 이 엽서를 뒤로 뒤집어보면....
이렇게 뒤에 보낸이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안창호선생이 딸에게 보낸 편지.  
안중근 의사의 아주 귀한 사진엽서(한쪽 면에 사진이 실린2점의 엽서이다. 인증근 의사가 1909년10월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다음해 3월26일 뤠순감옥에서 순국 하셨다. 이에 안의사를 추모하는 해외거주 교민들에 의해 제작된 매우 귀한 사진엽서 이다.
인중근의사의 본명은 안응칠 덕망 좊은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안중근의사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이 되어 독립운동을 한다.    하얼빈에서 이코히로부미를 암살하여 우리민족정신이 살아있음을 세계에 알린 안중근은 이토 사살하고   “코리아 뷰례”(대한독립 만세)를 힘껏 외쳤던 안중근의사는 일본의 뤼순 감옥에 수감되고 이듬해 3월 26일 사형을 당했다 
카이로회담 후, 한국의 독립을 축하 하며 나온 엽서와 독립 1주년 기념엽서
대전우편국 1904년 6월 1일 ‘대전우편수취소’로 시작하여, 1908년 정식 우편국으로 승격되었다.   당초 대전역사 안에 있었으나,  역사 개축과 확장 계획에 의해 1922년 9월 대전경찰서 앞 공터(본정 1정목)로  새로 건물을 지어 이전하였다.  1937년 공사비 4천원을 들여 대대적인 사무실 확장과 개보수 공사를 했으며, 이와 함께 보험분실이 설치되었다.  잘 지어진 2층 적벽돌 건물이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파괴되었다 
남산에서 본 서울의 전경 멀리 조선총독부 건물이 보인다.
일제시대에 남대문과 부근 도로등이 엽서를 통해 잘 보여 졌다.
경복궁내 경회루와 근전정  덕수궁 모습 
조선총독부
박문사(博文寺)는 일제 강점기에 서울중구 장충단공원 동쪽에 있던 사찰이다   조선 총독부는 장충단을 공원화한데 이어 1932년 에는 공원 동쪽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찰을 짓고  사찰이 자리잡은 언덕을 춘무산(春畝山)이라고 불렀다.
광희문,독립문,동대문 모습
YMCA 와 명동성당의 모습
한강인도교,철교,당인리 발전소 모습
비원 인정루
용산역 모습이 일본풍으로 지어진것을 보니 일본의 강점기때 행한 작태가 보이네요.
이시대는 청량리가 교외로 불리웠던 시절과 옛 북한산성의 모습
서울시청 및철도학교,총독부 우신국 모습
경성일보사,상공회의소,경성제국대학전경,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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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가 있었다.

80년대 이전까지 군대에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노래이다.

물론 정식 군가는 아니지만, 행군할때나 구보할때 가끔씩 행군발걸을에 맞춰 빠르고 힘차게 부르던

노래이며. 진중가요라고도 할 수 없는 통속적인 노래이다.

이 곳에 소개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저속한 그 노래의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도 한각 두각 낱각이 열두각 치마 밑에 감추고서

문을 나올때 치마 밑에 불이 붙어서 잠깐! (싸이렌소리) 붙어서

아~~아 ~~ 성냥공장 아가씨는 이거 야단났네

이~~거 큰일났네 이거 아가씨는 아악 아악 아악 백갈매기~~  

 

노랫말의 내용은 인천에 있는 성냥공장 아가씨가 치마 밑에다 몰래 성냥을 감추고 나오다가

불이 나서 경을 쳤다는 내용이다.

 

성적으로 한창 왕성한 시기에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던 군인들인지라 약간의 외설성이 담긴

이런 노래가 불려진 것은 이해가 갔다.

불현듯 그 노랫말이 떠오르면서 새삼스럽게 몇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1) 하필이면 성냥 공장 아가씨일까? (방직공장, 신발공장이 아니고)

2) 하필이면 인천일까?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도 있는데)

3) 하필이면 하찮은 성냥을 감추고 나왔을까? (돈이나 귀금속이 아니고)

4) 한루에 한두 갑이면 일년이면 수백 갑이지 왜 열두 갑일까?

5) 성냥은 황에다 힘을 주어 그어야 불이 붙는데, 불은 왜 났을까?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그 의문이 대부분 풀렸다.

우리 나라에 성냥이 보급된 경로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1880년 개화승(開化僧)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 갔다가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과

동행 귀국할 때 처음으로 성냥을 가지고 들어왔으나, 일반에게 생활용품으로 대중화하기는

국권피탈 후인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인천에 조선성냥[朝鮮燐寸]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군산·수원·영등포·마산·부산에 공장을 설립하여 생산 판매함으로써 가정용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공장설치도 일체 허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술도 배우지 못하게 하여,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서는 성냥 1통에 쌀 1되라는 비싼 값으로 판매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 처음으로 한국 사람의 손으로 인천에 대한성냥을 비롯하여 한국에 300여개의

수공업 형태의 공장이 설립되어 월간 400만 포의 성냥을 생산 공급하게 되었으며,

한국전쟁 후에는 150여 개 업체로 정리되었고, 1970년대부터 자동화시설로 전환함에 따라 업체

규모의 대형화로 업체수가 20개로 감소되었다.

 

즉, 우리 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은 일본인이 인천에 세운 조선성냥이고,

일본인들은 성냥의 독점화를 위하여 조선인의 기술 습득을 막았다.

 

그로 인해 일제 강점기 때는 성냥 한 통이 쌀 1되였다.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성냥공장도 인천의 대한성냥이었고, 성냥공장이 자동화시설을 갖추고

대형화 된 것은 1970년대 이후였다.

 

또한, 우리 나라는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이전까지 국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다.

소득 수준이 낮았으니 국민 대부분이 돈이 없었고 소비도 많지 않았다.

신발도 짚신을 신거나 집 주위에서는 맨발로 다닐 만큼 절약했고, 옷도 천을 사다가 집에서 해 입는

경우가 많았다.

 

군것질은 보통 사람에게는 사치였고, 외식이란 말 자체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절약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성냥이었다.

전기가 일상화 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까지도 매일 불(남포불, 등잔불(호롱불), 촛불 등)을

켜기 위해 성냥이 있어야 했고, 전기 밥솥이 없으니 밥을 짓기 위해서도 성냥이 있어야 했으며,

라이터가 귀한 시절이니 담뱃불도 성냥이었다.

 

즉, 성냥은 집집마다 반드시 소비해야하는 당시로서는 불황이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이다.

 

1) 방직공장이나 고무신공장보다 성냥 공장이 더 필요 했으니, 성냥공장 아가씨였고,

2)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성냥 공장과 해방 이후 최초의 성냥공장이 인천에 있었으니 인천의 성냥공장이었으며,

3) 성냥은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고 한 통에 쌀 1되의 고가였으니, 감춰서라도 가지고 갈만한 가치가 있는 것.

4) 그러면 하루에 한두 갑이면 1년이면 수백 갑인데, 왜 열두 갑일까? 

 

하루에 한두 갑이란 조그만 휴대용 성냥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치맛속이라고 해도, 커다란 성냥통을 몸에 숨기고 나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일년에 열두 갑이란 큰 성냥통으로 열두 갑일 것이다.

 

하루에 작은 성냥갑으로 한두 갑을 훔쳤다면, 1년이면 큰 통으로 열두어 갑 쯤 될 것이다.

성냥공장 아가씨들은 가난한 부모를 위해서 또는 힘들게 공부하는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서

먹을 것을 아끼고, 입을 것을 절약하며 일을 했다.

 

그러다가 명절 때 귀성하는 날 그 아가씨들이 고향에 가져가는 선물 보따리 속에는

귀금속은 아니지만 집에서 꼭 필요한 생필품인 성냥 눈물겨운 그 성냥이 들어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을 훔치다가 들켜서 인간 이하의 수모를 받았을 그 시절의 누이를 생각하면 서러운 마음도 든다.

 

 5) 치마 밑에 감춘 성냥에서 왜 불이 났을까?

최초의 성냥은 마찰성냥이었다.

마찰성냥이란 나뭇개비 끝에 붙어 있는 발화성 약제를 황이 아닌 벽이나 구둣굽 등에 마찰시켜도

어느 곳에서나 발화되는 성냥을 말한다.

 

황린성냥·적린성냥·황화인성냥이 이에 속한다.

마찰성냥은 황린을 발화연소제로 사용한 것으로 독성과 자연발화의 위험이 있으므로

국제적으로 제조 금지되고, 그것을 보완한 것이 지금의 안전성냥이다.

 

물론 마찰성냥이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 데도 옷속에 불이 붙을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 '치마 밑에 불이 붙어'인 것이다.

 

인천의 성냥공장 아가씨!

이 노래는 젊은 병사 들의 이성에 대한 욕구를 표현한 외설적인 노래이다.

 

그러나 그런 노래가 탄생한 이면에는 가난했던 옛날의 아픈 기억이 있다.

그 시절 우리 누이들의 눈물겨운 아픔이 스며있는 성냥공장 아가씨!

외설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부르기에는 민망한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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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3년 우유죽 타 먹으려고 줄 선 사람들

일반적인 우유죽은...

죽의 종류중에 하나이지만, 물에 불린 쌀을 맷돌에 갈아서 절반쯤 끓이다가 우유를 섞어서 쑨니다.

 

어렵게 살던 그시절 1963년 겨울,

서울 구세군 건물 앞에서 우유죽을 배급 받기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입니다.   

남루한 옷 차림에 다들 양동이나 깡통을 손에 들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 난지 겨우 10 여년,

전쟁의 후유증으로 산은 벌거숭이여서 추운겨울 땔나무가 없었고,

농사는 자급자족을 못 하던 그시절 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에 시달려야만 했었지만... 

 

당시 신문보도를 보면 충북 충주 시내에 있는 어린이 중에서 29%가 한 끼 또는 두 끼를 굶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굶주림은 농어촌 어디에나 공통적인 현상이었습니다.

 

그시절 이런 굶주림을 면하려면 미국에 의존 할 수 밖에 없었으며,

식량이 남아돌던 미국은 원조기관인 “케어”를 통해 옥수수가루와 우유가루를 한국으로 보냈고,

정부는 옥수수가루로는 죽을 쑤거나 빵을 만들어 배급했으며,

우유가루는 전국의 구세군 급식소를 통해 우유죽으로 배급했었습니다.

 

사진은 서울 신문로 1가, 옛 구세군 별관건물에 있던 “구세군 서울급식소”입니다.

 

구세군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8년이며,

1928년 완공된 구세군 본관(구세군 중앙회관)이 서울 정동에 남아있습니다.

구세군본관 건물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0호로 지정돼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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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부산 자갈치

1930년대 부산 자갈치 시장 모습

 

 

 

1950년대 영도다리

1950년대 부산 영도다리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초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 초로 예상됩니다. (자장면 값으로 볼때...)

 

 

 

남녀 거짓말 TOP 10

남자가 두 배 많아 남자는 하루에 6번, 여자는 하루 3번 정도씩 거짓말을 한다는 조사결과가 있다. 남녀 모두가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문제가 있어도 “아무 일 없어, 난 괜찮아”라는 것이었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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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직원만 알고있는 기름값 아끼는 팁

평소 알고있던 기름값 아끼는 방법들이 생각과 틀리게 더 비싸게 넣고 있는걸 알 수 있습니다. 내 차를 더 싸고 잘 관리하기 위해서 꼭 알아두면 좋을 듯 합니다. 1. 수요일을 공략한다. 굳이 일주일 중에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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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종류와 보관법

안녕하세요. 매일 매일 유익하고 알차고 궁금한 정보로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모모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내용은 와인 종류와 보관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레드 와인 레드 와인은 포도즙이 포도껍질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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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시 후회하는 보상금

안녕하세요. 매일 매일 유익하고 알차고 궁금한 정보로 찾아뵙고 인사드리는 모모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내용은 교통사고 발생 시 보험사에서는 알려주지 않는, 보험사 보상금에 대해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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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두면 좋지 않은 35가지

1. 집안의 위치를 바꿔보자. 현관에 정면으로 마주 보는 거울은 들러오는 행운을 돌려 보낸다. 이것은 이삿짐 센터에서도 다 아는 풍수의 기본 상식. 마찬가지로 현관문 과 마주하는 벽이나 칸막이가 바로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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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궁금한 모모파크

일상 생활에 지나쳐 버리기 쉬운, 소소한 궁금증을 하나씩 알아보고 상식과 지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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