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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 볼셰비키혁명 이후 70여 년간 모든 권력을 독점해온 소련의 정당.
ㆍ 1991년 소련 연방과 소련 공산당의 붕괴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수립된 후 1925년부터 다시 전연방공산당으로 불리다가
1951년 소련공산당으로 개칭되었다.
거의 70년동안 소련은 일당국가를 지향하는 단일체로서 건재하였고,
공산당은 마치 자식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엄한 아버지처럼 국가를 지배하였다.
요지프 스탈린(1879-1953)은 1924년부터 1953년까지 통치하였는데,
강력한 국제 안보 기구와 거대한 중앙계획 경제를 건설하였다.
그에게 반대하는 어떤 이라도 사형시켰다고 알려지는 그는 나찌 독일을 패배시키는데 일조했고,
서유럽과 소련 사이의 완충지대로서 동유럽에 국가들을 건설했다.
그의 후계자인 니키타 흐루시 초프(1894-1971)는 1953년부터 1964년까지 통치했고,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1906-1982)는 1964년부터 죽을때까지 소련을 통치했다.
흐루시초프와 브레즈네프는 권력이 공산당과 공산당 지도자에게 집중되어있는 독재 체제를 물려받았다.
영자는 막강한 적군에 의해 뒷받침되는 전능한 소련이라는 스탈린의 견해에 공감 했다.
양자는 내부적 불만을 같은 방법으로 억압했다.
흐루시초프는 1956년의 헝가리 사태를 분쇄했고,
브레즈네프는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그런 방식으로 다루었던 것이다.
1979년에 브레즈네프는 아프가니스탄에 같은 전술을 시도하나, 적군이 힌두 쿠시 산맥에 숨어있는 회교도 게릴라와 벌인 전투는 미국이 베트남의 정글에서 겪었던 경험과 마찬가지로 곧 교착상태에 봉착하게 되었다.
국내정치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은 소련내부의 기존 질서가 난파하기 시작한 원인이 되었다.
1985년, 브레즈네프가 죽은지 3년후에, 새로운 개혁적 성향을 지닌 지도자가 권좌에 올랐다.
미하일 고르바초프(1931- )는 소련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 트로이카(재건)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공산 국가는 이미 부스러지기 시작하였고,
오직 전체주의가 뒷받침한 철의 유대만이 소련의 각 조각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있었을 뿐이었다.
고르바쵸프가 이 유대를 풀어놓자, 15개의 공화국은 각자 더 많은 자치권을 달라고 외쳐댔고,
발틱해 연안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보리스 옐친(1931-)은 1991년 6월에 넓은 러시아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소련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그의 공화 국, 러시아에거 보다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였다.
1991년 8월 19일,
일단의 강경파 공산주의자 집단이 고르바쵸프를 구금하고 브레즈네프 식의 국가로 복괴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들에게 놀랍게도, 옐친은 그들에 게 대항하였으며, 그들의 쿠데타는 며칠만에 끝나게 되었다.
비록 옐친이 고르바초프를 구출해 내는데 성공했지만, 소련 연방의 통치 구조는 완전히 와해되었다는 사실은
모든이에게 명백해졌다.
고르바초프는 각 공화국들을 서로 모으기를 몇개월간 시도하였으나,
결국 소련 공산당과 소련은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1991년 12월 23일, 75년간의 소련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친숙한 붉은 깃발은
마지막으로 내려지고, 새로운 15개의 독립 공화국들의 15개의 깃발이 그를 대신하였다.
1992년 1월 1일, 소련 연방과 소련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그 존재가 끝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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