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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읽어보는 잡학지식

애플 사(社)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 일대기

by 모모파크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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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    [Steve Jobs, 1955.2.24~2011.10.5]  

 

스티브 잡스는 미국의 기업가이며 애플 사(社)의 창업자이다.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고 성공을 거두었지만, 회사 내부 사정으로 애플을 떠나고 넥스트 사(社)를 세웠다.

그러나 애플이 넥스트스텝을 인수하면서 경영 컨설턴트로 복귀했다.

애플 CEO로 활동하며 아이폰, 아이패드를 출시, IT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스티브 잡스 [ Steve Jobs ]     생애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 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미국서부의 농부였다.

 

그의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인이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 해안경비대에 들어가 경비정 기관사로 근무했었다.

 

전역 후 클라라와 결혼하였고 자동차 정비, 할부금 수금원 등의 직업을 가졌고

아이가 없자 스티브 잡스를 입양하였다.

 

잡스는 성인이 되어서 작가로 활동하는 모나 심프슨(Mona Simpson)이라는 여동생과

대화 치료사였던 어머니와 정치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존재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는 친부모에 대해 냉담하게 반응하며, 언제나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겼다.

 

스티브 잡스가 3살 되던해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직장(자동차 영업, 부동산 중계)을 따라 사우스 샌프란시스코의

산업단지에 들어선 주택가로 이주하였고 주변 전자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장하였다.

 

 

이때 전자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동년배 빌 페르난데스,

5살이 많았던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 교류했으며,

스티브 잡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모두 학교에서는 낙제생이자 독선적인 

성격을 가진 외톨이였지만 전자적인 지식과 집념 그리고 유쾌한 성격은 비슷했다.

 

이당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당시 미국 히피문화에 흠뻑 젖어있었다고 회고하였다.

 

홈스테드고등학교를 마친 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마약을 중단하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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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아타리(Atari)라는 전자게임 회사에 취업하였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스티브 잡스는 히피차림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수개월간 인도 북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였지만, 그가 기대했던 내면의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지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가 아타리사에 복직하였다.

 

그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으며 이때 다시 워즈니악과 친분을 쌓았고

전자분야의 지식이 해박했던 그의 도움을 받았다.

 

사업적인 수완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는

천부적인 전자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했고

각각의 장점을 합쳐 두사람은 1976년 컴퓨터(회로기판)를 제조하는 회사를 공동창업을 하였다.

 

 

회사 이름인 애플(Apple)에 대해서는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를 만들 때,

사과를 한입 베어물고 컴퓨터 위에 올려놓았던 것을 상징화한 것이라는 설,

사과가 좋은 의미(성취, 지적 호기심, 건강)를 담고 있어 지었다는 설, IBM이 '썩은 사과'를 신문 광고에 내고

애플을 비꼬자 다음날 애플이 '썩은 곳이 도려내진 사과'를 신문에 내어 응수한 사건 때문에

자사 로고까지 바꾸었다는 설 등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죽은 뒤 공동 창업자인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 주의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였던 사과농장을 연상하여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회로기판만 있는 퍼스널컴퓨터 '애플Ⅰ'을 만들어 발표했으며,

당시 퍼스널컴퓨터 시장이 주목받게 되자 곧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인 애플Ⅱ를 만들어 냈다.

 

확장슬롯으로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획기적인 운영체계를 적용하여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영세한 업체로서는 사업여건이 불리했다.

스티브는 이런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비전을 열정적으로 설득해나갔다.

 

마침내 그들이 만든 퍼스널컴퓨터는 시장에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다.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미국에서 최고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연인관계였던 크리스 앤과 사이에서 리사(Lisa)라는 딸을 두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친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리사가 친자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잡스의 딸 리사 브레넌 잡스. 1978년생이며, 하버드대학 재학 시절 교내 신문에 투고한 것을 시작으로 다수의 신문, 잡지에 글을 쓰는 문필가로 활동중이다. 2018년에 아버지 잡스와의 쉽지 않았던 삶 이야기를 다룬 'Small Fry'라는 자서전을 써서 냈다.

 

또한 그는 모순된 성격과 인색함으로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었던 친구들에게서 외면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이상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집중했다.

 

회사내에서는 매킨토시와 리사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애플사의 핵심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고,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화를 조화롭게 리드하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 자신이 주도했던 리사 프로젝트에서 밀려나자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그를 믿고 따랐던 매킨토시 프로젝트 담당 엔지니어들은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연봉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었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배신감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고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실패한 리사 프로젝트팀과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매킨토시 발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맥(Ma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매는 급속하게 줄었다.

 

스티브 잡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분위기와 함께 매킨토시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불편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1월 19일 워즈니악과 함께 백악관에 초빙되어 레이건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기술훈장을 받았지만

워즈니악은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마침내 스티브는 현실성없는 망상가이자 회사를 도탄에 빠뜨린 인사로

지목되어 1985년 5월 경영 일선에서 쫓겨났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NeXT)社를 세워

세계최초의 객체지향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개발하였고

1986년에는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픽사(Pixar)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차세대 운영체제를 갖춘 그래픽 전용 컴퓨터를 개발하여 의료업계에 판매하려고 시도했으나

두 회사 모두 수익을 내지 못하고 스티브 잡스를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픽사를 담당했던 엔지니어와 그래픽 아티스트들은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것을 잡스에게 제안했다.

 

잡스는 이에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도 하였다.

 

 

1991년 3월 18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로렌 파월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3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는 결혼과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를 두고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과 확신을 가지지 못했지만

예전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변해있었다.

 

가정은 행복했지만 그의 사업은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미국의 거부 로스 페로와 일본 캐논(Canon)사를 통해 투자를 받으며 겨우 버텨나가고 있었고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픽사의 존 레스터가 감독한 '토이스토리(Toy story)'의 원형이 되는 '틴토이(Tin Toy)'를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게되었다.

하지만 아직 큰 돈을 벌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때까지 잡스는 픽사를 인수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1996년 적자에 허덕이며 새로운 운영체계를 원했던 애플이 넥스트 사(社)를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3년만에 다시 애플로 복귀하였고 경영 컨설턴트로 역할하며 4억달러 흑자를 내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쓸모없는 회사로 생각했던 픽사는 존 래스터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대대적인 성공에

맞추어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거의 빈털털이에 내몰렸던 스티브 잡스를 단번에 억만장자에 올려놓았다.

 

2006년에 월트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 임원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2년 동안 애플은 자본이 2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픽사는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사로 기록되고 있었다.

 

한층 여유로워진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과 접목한 새로운 제품 개발에 눈을 돌렸으며

그 대상은 음악이었다.

 

그는 항상 제품에서 모양과 색깔 등의 디자인 결정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아이튠즈 개발에 이어 아이팟라는 MP3플레이어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제 사업가에서 세상을 바꾸는 인물로 인지되고 있었다.

많은 청중들 앞에서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로 연설하는 그의 모습은 바뀌어가는 세상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로

각인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만든 제품에 열광했다.

 

2007년 맥월드에서 아이폰이 발표되고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애플은 약 50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특히 아이폰은 통신업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문화적인 파급 효과도 지대했다.

또한 2010년 발표된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주도하는 변화는 가속화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개인적으로는 희귀암 발병 등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 2004년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2009년 간(肝) 이식 치료를 받았다.

 

2011년 8월 24일 병세 악화로 애플 CEO직을 사임했고,

사임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5일에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사인(死因)은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이었다.

 

 

 

   스티브 잡스 [ Steve Jobs ]      경영철학   

 

프레젠테이션의 귀재로 유명하다.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소개하는데에 아주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인 발표방식을 쓰면서

많은 발표자들의 귀감이 되고있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철학은 다음과 같다.

 

1.  경영은 기존 질서와 철저히 다르게.

 

2.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해 직접 몸으로 뛰어라.

 

3.  항상 새로운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포기하지 마라.

 

4.  기술력을 과신하기보다 소비자 눈높이에 맞춰라.

 

5.  간단하고 단순하게 하라.

 

 

 

   스티브 잡스 [ Steve Jobs ]      어록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라, 항상 우직하게.

 

"One more thing..."
한가지만 더...

 

"포커스 그룹(Focus Group)을 통해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직접 물건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만큼 미친 사람들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혁신은 리더와 추종자를 구분하는 잣대다.

 

창의성이란 단지 어떤 것들을 서로 잇는 것일 뿐이다. 당신이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해냈냐 묻는다면 그들은 아마 조금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사실 정말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보았을 뿐이고 그것은 얼마 후 그들에게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훌륭한 아티스트는 베끼고 위대한 아티스트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

 

컴퓨터 시장 내에서 Apple의 점유율은 BMW메르세데스-벤츠, 포르셰가 자동차 시장 내에서 차지하는 점유율보다도 더 높다. BMW나 벤츠가 되려고 하는 것이 뭐가 잘못된 건가?

 

나는 지금껏 Apple이 이쪽(컴퓨터) 업계의 소니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오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Apple은 이 업계의 Apple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의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 [ Steve Jobs ]      전해지는 이야기   


•  잡스의 성은 원래 /dʒɒbz/로 발음된다.

원래 외래어 표기법을 정석대로 따른다면 좁즈가 되겠으나,

아무래도 잡스가 미국인이라 본인이 사용하던 미국식 영어에서 저 ɒ 부분을 용인발음보다 더 큰

개구도로 발음했던 점도 있고, 뒤의 s가 유성음임에도 불구하고 언론 및 언중이 '잡스'라는 표기를

자주 사용하다 보니 해당 표기가 공식 표기가 되었다.

언론 보도나 서적 등에서 영어권 인명을 한국어로 표기할 때,

뒤에 오는 s의 처리는 원어와 동떨어지거나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다.

 

•  종교는 선불교로 리드 대학교 철학과를 한 학기만 다니고 중퇴한 후,

사과 농장에서 히피 공동체 생활을 하다가 일본 선불교 승려인 오토가와 고분 치노를 만나 선불교에 입문했다.

 

•  왼손잡이다. 다만 수기는 오른손으로 썼다.

스티브 잡스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손으로 턱을 쥐고 있는 사진도 잘 보면 왼손을 쓰고 있다.

 

•밥 딜런의 광팬이었고 그를 매우 존경했다.

딜런이 녹음한 773곡 전곡이 담긴 디지털 패키지 세트를 iTunes Store에서 판매하기로 했는데

상품의 출시를 알리면서 잡스는 "밥 딜런은 우리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시인이자 뮤지션이다.

 

 

또한 그는 개인적으로 제 영웅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Apple 초창기 잡스는 100시간 분량이 넘는 1960년대 딜런 음악 해적판을 수집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저술한 잡스 전기에 따르면 그와 Apple 초기의

스티브 워즈니악은 딜런 팬으로서 마음이 맞았다.

 

“딜런의 노래책을 구입해 가사를 해석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고 워즈니악은 말했다.

“딜런의 가사들은 창조적 사고를 불러내는 주문이었다.”

그 뒤 잡스는 1984년 Macintosh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밥 딜런의 곡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마침내 딜런과 상봉했다.

잡스의 전기에 따르면 두 사람은 “딜런의 방 앞쪽 테라스에 앉아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잡스는 긴장했지만 그의 우상은 “내가 바라던 그대로였다. 정말로 허심탄회하고 솔직했다.”

 

잡스가 기억하는 한,

그가 너무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온 적은 오직 밥 딜런을 만났을 때(2004년 10월)뿐이었다'는 대목도 있다.

 

 

 

•  마이클 잭슨의 노래 Billie Jean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일을 하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Billie Jean을 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  비틀즈의 광팬이기도 했다.

iTunes는 현재도 유일하게 전세계에서 비틀즈의 모든 곡을 감상할 수 있는 음원서비스가 되었다.

이는 Apple과 동명의 회사였던 애플 레코드와의 분쟁 때문인데,

2004년 즈음 Apple의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복잡하게 꼬인 저작권을 모두 인수하였다.

 

이후 2016년이 되어서야 기타 음원사이트에 비틀즈의 곡이 서비스 되고 있다.

그의 아이폰에는 존 레논의 명곡인 Strawberry Fields Forever가 10개가 넘는 버전이 담겨져있었다고 한다.

 

•  워즈니악의 증언으로는 아인 랜드의 움츠린 아틀라스를 좋아했다고 한다.

 

•  반전 가수로 유명한 조안 바에즈와 잠시 사귄적이 있었는데 잡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때문에

그 관계가 오래 지속되지는 않고 나중엔 그냥 친구로 남았다. 조안 바에즈가 나중에 술회하기를 잡스가

자신과 사귀었던 이유는 그냥 단순히 밥 딜런의 광팬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  비건 채식주의자였고, 견과류와 물만 먹었다고 한다.

로렌과 결혼하기 전에는 떨어진 과일만 먹는 극단적 채식주의자였다가 결혼할 때쯤 비건으로 전향했다.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에는 의사 권유에 따라 잡식을 했다.

채식주의자였지만 가족과의 일본 여행 때 장어 초밥만큼은 너무도 좋아했다고 한다.

훗날 영화 <잡스>에서 잡스 역을 맡은 애슈턴 커처도 영화 촬영 당시 메소드 연기를 위해

물과 견과류만 먹다가 췌장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에 호송되었었다. 

 

•  펩시의 전 CEO였던 존 스컬리를 Apple의 CEO로 영입할 때의 일화가 꽤 전설적인데,

"(몸에 안좋은) 설탕물이나 파는 거 그만하고 나랑 같이 세상을 바꿔보고 싶지 않습니까?"라고

설득시켰다고 한다.

 

훗날 스컬리는 잡스를 내쫒아버리는 일을 한다.

그리고 스컬리는 훗날의 iPhone과 iPad의 직계 조상인

Newton MessagePad를 만들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잡스의 말대로 되었다. 

 

•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곤 하지만, 이 사람은 '사업가'지 절대 '개발자'가 아니다.

물론 IT분야를 제대로 이해하는 유능한 경영자임은 사실인데 위의 FBI 보고서에는

'그런데 기술 부분에서는 좀 거시기...'라는 평가도 있었다고...

 

그러나 그가 이룬 업적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명문대학도 아니고 그저 대학중퇴자에 입양아,

문제아였던 그가 21세기 IT 산업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그의 삶 자체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희망을 준다.

 

그래서 잡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워즈니악이 없었다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인물이란 얘기를 자주 한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  애초에 그는 조지 루카스로부터 픽사를 인수할 생각이 없었으나

픽사의 인수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픽사의 IPO로 인해 가사회생했고, 직원을 다루는 방식을 변화시키며

한 회사의 CEO로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후 픽사가 디즈니에 인수되면서 잡스는 디즈니의 최대주주가 되었었다.

사후 그의 유산은 부인이 상속했으나 로렌 파월 잡스는 지분을 일부 정리하고

2019년 기준 디즈니의 5대 주주가 되었다고 한다.

 

•  Apple의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켄 시걸은 잡스가 1997년 회사에 다시 복귀했을  당시를 떠올렸는데

잡스는 한 미팅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데스크탑 전쟁은 끝났다.

 

우리는 (Microsoft에) 패배했다.'고 말했다 한다.

그 말은 더 이상 회사가 Microsoft를 이기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Apple다움'을 다시 이끌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잡스는 Apple을 BMW에 비교하기도 했는데

BMW의 경우 전체 자동차 시장 점유율로만 따지면 5% 남짓의 소규모 브랜드이지만

여전히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브랜드 중 하나로 여겨지는 것처럼 Apple 역시 양보다는

퀄리티와 혁신에 더 집중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잡스는 인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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