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시체를 매장하기 전, 마지막으로 죽은 아들을 무릎 위에 안아본다.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여 피에타라고 칭해지는 이 주제는 복음서 구절이나 외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때문에,
피에타는 원전에 구애받을 필요 없이, 미술가들에게는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주제로 선택되어졌다.
예수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과 친구만이 그를 둘러싸고 죽음을 슬퍼하는 애도의 장면에서, 마리아와 예수만을 선택하여, 분리시킨 피에타의 기원은 13세기 독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에타의 기원, 베스퍼빌트
독일에서는 주로 나무를 조각하여 채색한 이 장면을 베스퍼빌트(Vesperbild)라고 부르는데,
이는 저녁 기도상이라는 뜻으로 성금요일 저녁을 기념하는 의미로 제작되었다.
특히 14세기 후반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라인 연안의 여자 수도원에서 많이 제작되었다. 14세기 유행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성 보나벤투라(St. Bonaventura)의 [그리스도 삶에
대한 명상]에서는 죽은 그리스도에 대한 성모의 애절한 고통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이리저리 그리스도의 손과 옆구리에 난 상처를 바라보았다.
그리스도의 얼굴과 머리를 바라본 마리아는 가시관의 흉터를, 쥐어뜯긴 턱수염을,
침과 피로 더러워진 얼굴을 응시하였다.
그녀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무릎에 앉고 있는 나의 아들아, 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네 자신을 희생하였구나. 나는 기뻐해야 할 이 구원의 행위가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롭구나”
1300년 경, 제작된 [뢰트겐 피에타]에는 고통스러운 그리스도의 얼굴,
마리아는 끔찍하고 무자비하게 손상된 뒤틀린 아들의 육체를 무릎 위에 안고 있다.
가시관을 쓴 그의 머리는 힘없이 뒤로 쳐졌으며, 두꺼운 마치 포도송이 같은 핏방울이 손과 발
옆구리의 상처에서 솟아나고 있다.
그리스도의 피를 포도송이로 표현한 것은 그리스도가 ‘신비한 포도밭’이라는 비유에서 유래한 것이다.
뢴트겐의 수집품이었던 이 작품이 고통을 직설적이고 강력하게 재현한 반면,
1400년경에 제작된 프라이부르그 대성당에 있는 [피에타]에는 변화가 감지된다.
우선 마리아의 베일과 겉옷이 더욱 풍성해지고, 그녀의 얼굴은 젊고 아름답다.
또한 그녀가 겪는 고통의 표현도 귀족들의 취향이 반영되어 한결 부드럽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무릎에 길게 누워있는 그리스도의 죽은 육체는 여전히 비참하게 묘사되었다.
과도하게 뒤로 젖혀진 그의 머리와 실제와 유사한 머리카락은 후대에 이 조각상을 복원하면서 생긴 것이다. 마리아의 고통에 대한 완화된 표현은 당시 ‘아름다운 마돈나(Schönen Madonnen)’로 불리는
성모자 조각상의 출현과 연결되며, 보다 세련된 영성을 나타낸 것이다.
조용한, 그러나 깊은 슬픔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독일에서 나타난 피에타상은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1/3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과 더불어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유럽으로 확산된다.
독일에서의 피에타가 채색목조로 제작되었던 반면 이탈리아와 프랑스 지역에서는 회화가 주를 이룬다. 회화로 번안된 피에타에는 마리아와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때때로 사도 요한과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인물이 삽입되기도 한다.
1455년 경에 제작된 [아비뇽 피에타]에서
마리아는 두 손을 모은 경배의 자세로 조용히 무릎 위의 아들을 응시한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머리에서 가시관을 벗기고 있으며,
마리아 막달레나는 향유병을 들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황금색 배경은 마치 성금요일 저녁 붉게 물든 하늘을 연상시키며,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후광은 화려함을 추구한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의 영향이다.
한편 멀리 보이는 흐릿한 풍경과 이 그림의 봉헌자 혹은 작가의 초상으로 여겨지는
인물의 입체적인 모습은 매우 사실적이다.
죽은 그리스도를 조용히 바라보는 이러한 마리아의 모습은 독일 카르투지오 수도회의
신비주의자인 하인리히 주조(Heinrich Suso)의 사상, 즉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통을
정신적인 명상 속에서 감지한다’는 주장에서 영양을 받은 것으로 설명된다.
앙게랑 샤롱통의 [피에타]가 마리아의 조용한 슬픔을 묘사했다면,
1460년경 조반니 벨리니가 그린 [브레라 피에타]는 특별한 화면 구성으로 보는 이를 깊은 슬픔으로 이끈다.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와 복음사가 요한이 함께 석관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석관의 가장 자리에 놓인 그리스도의 손에 주목하면, 이 손은 구성상 가장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경계 짓는 동시에, 등장인물의 영역과 관람자의 영역의 경계이기도 하다.
즉 상처난 손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의해 성과 속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또 손 아래 석관에는 다음과 같은 고대의 비가(悲歌)에서 가져온 라틴 명문이 적혀있다.
HAEC FERE QUUM GEMITUS TURGENTIA LUMINA PROMANT
BELLINI POTERAT FLERE IOANNIS OPUS
이를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커지는 눈이 탄식을 불러일으킬 때,
조반니 벨리니의 이 작품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벨리니가 댓구를 이루는 고대 시가 형식을 비문에 첨가한 것은
당시 베네치아에서 절정을 이룬 고대문학의 영향이며,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들과
감정이입과 심리적인 동화를 꾀하려한 의도로 여겨진다.
한편 성모 마리아는 아들의 다른 한 손을 잡고 아들의 얼굴에 자신의 볼을 대고 있는데 [블라디미르의 성모]와 같은 비잔틴 이콘 엘레오우자(Eleousa)를 연상시키는 이러한 자세는 피에타가 성모자상과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들의 마지막 체온이라도 느껴보려는 마리아의 슬픔이 깊게 침잠된 슬픔이라면, 멍하니 화면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사도 요한의 표정은 관객을 성모의 깊은 슬픔으로 이끌어 공감하게 한다.
비극적 탄식을 초월한 아름다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1499년 완성된 미켈란젤로의 [바티칸 피에타]에는 젊은 마리아의 침착한 아름다움이 주조를 이룬다.
그리스도의 몸은 잠든 아기처럼 성모 마리아의 무릎을 가로질러 뉘여져 있다.
젊고 아름다운 마리아의 모습과 어머니의 무릎에서 잠든 것 같은 그리스도의 평온한 표정에는 초기의 베스퍼빌트가 보여준 고통의 긴장감은 없다.
마리아의 가슴에 놓인 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서명을 남긴 유일한 조각이다.
[피에타]에 대한 미켈란젤로 자신의 설명은 아름다움에 기반을 둔 신비주의가 어떻게
그의 작품전체를 아우르는지 말해준다. 그는 앳된 얼굴로 표현된 마리아에 대해 제자 아스카니오
콘디비(Ascanio Condivi)에게 이렇게 말했다.
“순결한 여자들이 순결하지 않은 여자들보다 젊음을 더 잘 유지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티끌만큼도 추잡한 욕망의 때가 묻지 않은 육체를 가진 동정녀라면 말할 것도 없고 말일세.
반면 아들인 그리스도에게는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어.
그는 인간의 몸을 가졌기에 늙은 것이지. [..] 그러니 내가 가장 신성한 처녀인 성모 마리아,
즉 신의 어머니를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게 표현하고 아들인 그리스도는 나이에 맞게 표현했다고 해서 놀라지 말게나”
논란을 불러 일으킬법한 미켈란젤로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 그가 단테의 [신곡]을 꼼꼼히 읽고,
“동정녀 마리아, 당신 아들의 딸이시여!” 라는 천국편 33곡 첫 구절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진다.
평생 이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그는
성모의 비극적인 탄식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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