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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사소한 궁금증

중국의 4대 미녀

by 모모파크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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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4대 미녀

중국의 4대 미녀하면, 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를 일컫습니다.

오늘은 중국의 4대 미녀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겠습니다.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沈魚落雁  물고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기러기는 땅 밑으로 떨어지며
閉月羞花  달은 구름 뒤로 얼굴을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노라

 


천하절색(天下絶色)의 미모(美貌)! 경국지색(傾國之色),경국경성(傾國傾城)

 

1. 서시(西施)-침어(浸魚)

2. 왕소군(王昭君)-낙안(落雁)

3. 초선(貂蟬)-폐월(閉月)

4. 양옥환(양귀비,楊貴妃)-수화(羞花)

 

 

1. 월의 서시

 

​범려와 서시 : 서시(西施 생년 미상)는 본명이 시이광(施夷光)이다.  저장성 ‘사오싱’ 출신이며,

​춘추전국시대(BC770~BC221)의 서시(西施)는 춘추 말기의 월(越)나라 여인입니다.

 

당시 역사적 상황은 오왕 ‘합려’가 월왕 ‘구천’과 싸우다 화살에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죽었기 때문에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는 명신 ‘오자서’의 도움으로 왕이 된 후에 월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이겼고,

‘구천’은 신하의 예로 오왕을 섬길 것을 맹세하는 굴육적인 외교로 간신히 월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자서’가 있는 한, 오나라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명신 ‘범려’는

미인 ‘서시’를 오나라에 보내어 ‘오자서’와 ‘부차’를 이간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서시’를 역사상 최초의 미녀 스파이로 보는 이들이 많다.

오나라의 명신 ‘오자서’가 그녀가 오나라에 온지 얼마후에 죽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사로 잡혀, 나라를 돌보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서시에 빠져들고 정치를 돌보지 않게 되어 마침내 월나라에 패망하게 되는데...

토목공사에 열을 올린 것도 그녀의 계략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오자서’가 죽자 월왕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범려’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구천’을 만류했다고 한다.

‘서시’가 오나라에 온지 10년만인 BC473년 월왕 ‘구천’은 드디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부차’는 자살했다.

‘서시’도 이 때 자살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그것은 전설일 뿐이고,

그녀가 ‘범려’와 함께 제나라에 갔다는 기록이 정설에 가깝다.

 

더욱이 시성 ‘이태백’의 시에 ‘서시’가 다시는 월나라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녀의 자살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역사적 자료라고 믿어진다.

경국지색들은 대부분 자살설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양귀비’는 강요에 의해서 자살했고(일본 입국설도 있다), 《삼국지연의》에 자살했다고 나오는 ‘초선’은

소설 속 가상의 여인이다.

 

‘포사’ 역시 자살설이 있지만 ‘견융’이 그녀를 강제로 데려 갔다는 기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여성이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비극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미녀들을 좋게 말하기 위해서

자살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2. 위의 초선

 

동탁과 초선 : 초선(貂蟬 175-199) (소설 상 나이를 환산한 것임)

중국 4대 미인이라고 일컬어 지는 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중 유일하게 허구의 인물이다.

‘초선(貂蟬)’이란 이름은 한자 그대로 ‘담비’와 ‘매미’를 뜻하는 별칭일 가능성이 높다.

《삼국지연의》는 ‘왕윤’의 시비인 10대 소녀를 등장시켜,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시킨다.

우선 ‘여포’에게 선을 보여 첩이 되기로 약속한 후, ‘동탁’의 첩으로 들어가서 ‘여포’를 분기하게 한 다음,

둘 사이를 갈라놓아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처치하게 만드는 계략이다.

미녀연환계라고 불리는 대목으로 《삼국지연의》에서 흥미진진한 부분 중 하나이다.

참고로 ‘초선’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은 정사 《삼국지 여포전》에 실려 있는

“여포는 동탁의 시비와 사사로이 통정하여, 이 일이 발각될까 두려워 하여, 마음속으로 불안해 했다.”라고 하는

한 줄의 글귀이다.

 

지혜와 담력, 그리고 자신의 정조까지 내버리는 희생정신을 갖춘 초선의 인물상은 대단히 독특했으며,

덕분에 엄청난 인기가 있어서 가공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일컬어진다.

 

《삼국지연의》 이전의 《삼국지평화》나 《삼국극》에서는 처음부터 ‘여포’의 아내였으며,

전란 중에 헤어졌다가 ‘왕윤’에게 거두어 졌다는 설정으로 등장한다. 왠지 이 설정에서는 성이 임씨이며,

따라서 임초선이 된다.

그리고 ‘여포’가 최후를 맞을 때는, 서주에서 ‘여포’에게 ‘진궁’의 계책에 따르지 않을 것을 요청하여

‘여포’를 몰락하게 만드는 역할을 맡게 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여포’가 패망한 후에 ‘초선’은 ‘여포’의 식구들과 함께 ‘조조’가 데려갔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그 뒤의 이야기는 전혀 써 있지 않아서 후세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래서 ‘조조’가 ‘관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적토마와 한 셋트로 보냈으나, ‘관우’가 ‘초선’은 요물이라고

베어버렸다고 하는 “관운장월하참초선”이라는 경극이 태어났다.

 

3. 당의 왕소군

 

선우(單于)와 왕소군(王昭君) : 왕소군은 본래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으나 흉노 왕 선우에게 시집을 가게 된다.

이름은 장(嬙), 출전은 《한서》이다.

그녀는 빼어난 미모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도 황제의 부름을 받지 못했는데,

당시 궁녀들의 얼굴을 그려 황제에게 바쳤던 화공 ‘모연수’가 ‘왕소군’이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

그녀의 얼굴을 추하게 그렸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왕소군’은 원제가 그녀를 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궁궐 생활을 하다가 흉노의 왕 선우(單于)의 왕비가 된다. 당시 한나라는 흉노와 화친하기 위해서 한나라의 공주를 흉노의 왕에게 시집을 보냈다.

이 때 황제가 베푸는 연회에서 선우는 공주가 아닌 황제의 궁녀 중에서 아내를 맞이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나라는 궁녀들 중 빼어난 미녀들은 골라내어 보여주지 않아 선우가 선택할 수 없도록 만들었지만,

이 감춰둔 명단 중에 왕소군은 빠져 있었다.

 

원제는 ‘왕소군’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나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이 일로 화공 ‘모연수’는 처벌받았지만 일개 화공이 그런 일을 했다기 보다는

어떤 특정 세력이 왕소군이 황제의 총애를 받지 못하게 방해한 일이라고 추측되어 진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① 당시 권력을 잡고 있었던 신하가 원제가 미색에 빠져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랬다는 설,

② 흉노의 선우를 미색으로 현혹하여 흉노의 국력을 약화시킨 후에 흉노를 공격하려고 했다는 설,

③ 일종의 스파이로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 보냈다는 설,

④ 평화사절로써 그녀를 시집 보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⑤ 원제의 황후나 황후의 세력이 왕소군이 원제의 총애를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흉노의 선우에게 시집 보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왕소군’이 흉노로 떠난 후에 원제는 병으로 죽고, 수십년 후에 황후의 조카인 ‘왕망’이

‘신’나라를 건국했지만, ‘왕소군’이 흉노로 시집간 데 대한 의혹은 밝혀지지 않았다.

​​

 

4. 당의 양귀비

 

당 현종과 양귀비 : 양귀비(楊貴妃 719-756)는 당 현종의 후궁이자, 며느리이다.

성은 양(楊), 이름은 옥환(玉環)이며, 귀비는 황비로서 순위를 나타내는 칭호이다.

‘양옥환’은 719년 당 현종 집권 초기에 현재의 ‘쓰촨’성 ‘두장옌’에서 태어나, 현재의 ‘산서’성 ‘융지’에서 자랐다.

 

‘양옥환’의 아버지는 촉주(蜀州)의 호구를 조사하는 하급 관리였다.

그는 아들 없이 양옥환과 그의 세 언니를 낳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죽었으며,

이로 인해 그녀는 하남성 낙양에서 하급 관리를 하던 숙부의 손에서 자랐다.

 

숙부는 가정교육이 엄격하여 사서삼경을 가르치고 많은 시문을 외우게 했는데, 총명했던 옥환은 숙부 집에 있던 기생 출신의 하녀에게서 호선무(胡旋舞)라는 춤도 배웠다.

 

당시,

감찰어사를 맡고 있던 옥환의 친척 양신명(楊愼名)은, 그의 집에서 열리는 연회에 ‘옥환’을 자주 초청했는데, 연회의 손님들 중에는 중종의 딸 ‘장녕공주’도 있었다.

 

장녕공주의 아들 ‘양회’가 현종이 가장 총애하는 딸 함의공주(咸宜公主)와 결혼하게 되었는데, 장녕공주는 이 혼례에서 빼어난 미모로 소문난 옥환에게 들러리를 부탁했다.

 

함의공주와 마찬가지로, ‘무혜비(武惠妃)’의 소생이었던 제18황자 수왕 ‘이모(李瑁)’는 ‘옥환’의 미모에 매료되었고, 함의공주의 주선으로 ‘무혜비’도 ‘옥환’을 마음에 들어 하여 현종에게 ‘옥환’을 수왕의 비로 달라고 청했다.

 

‘무혜비’는 ‘측천무후’의 조카라는 이유로 황후에는 봉해지지 못했지만, 현종에게서 가장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기 때문에 현종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733년 ‘옥환’은 16세의 나이로 수왕 ‘이모’와 결혼했다.

‘이모’는 무혜비와 이임보(李林甫)의 후원으로 황태자에 추천되었으나, ‘무혜비’가 사망한 이듬해 환관 ‘고력사’의 추천으로 ‘이여(李璵)’가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무혜비’의 죽음 이후 실의에 빠진 현종을 위로하기 위해, ‘고력사’는 ‘무혜비’와 닮은 ‘옥환’이 수왕과 함께 화청지(華淸池)로 피서를 간다는 사실을 알고, 현종에게 화청지로 가도록 권했다.

 

그 날 이후로 ‘무혜비’를 닮은 미모에 시와 노래에까지 능한 ‘옥환’에 대해 감정이 생긴 현종은 ‘고력사’와 이 일을 상의했다. ‘고력사’는 옥환을 만나 현종의 생각을 암시하였고, 현종은 ‘옥환’을 화산의 도교 사원으로 출가 시켜 아들인 수왕 ‘이모’에게 서 떼어놓았다.

 

그리고 궁 안에 도교 사원인 태진궁(太眞宮)을 짓고, ‘옥환’을 다시 이곳을 관리하는 여관(女冠)으로 불러들였다. 

 

이때 양귀비의 나이 22세, 현종은 57세였다.

 

745년 ‘양옥환’이 27세에 귀비가 되면서, 당나라는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당 현종 초기에는 ‘개원의 치’를 이룩할 정도로 어진 정치를 펼쳤지만, ‘양귀비’의 등장 이후 양귀비 일가의 전횡이 시작되면서, 당나라는 점점 힘을 쇠락하게 된다.

 

양귀비의 세 오빠에게 모두 높은 벼슬을 주었고, 

세 명의 언니들 모두를 국부인에 책명할 정도로 그녀를 총애했다.

 

그 중 양귀비의 사촌 오빠인 ‘양소’는 현종에게 ‘국충’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고, 승상의 지위에까지 올라 국정을 전횡한 인물로 환관 ‘고력사’와 담합하여, 당 현종을 정치에서 관심을 멀어지게 한다.

747년 절도사 ‘안록산’이 등장하여, 양귀비는 그와 친해지게 된다. 새로운 권력자의 등장에 위기를 느낀 ‘양’국충은 견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은 ‘안사의 난’이 일어나 당나라가 멸망하는 원인이 된다.

756년 ‘가서한’은 ‘안록산’에게 대패하면서 잡혔고, 동관도 함락 되었다.

현종은 수도 장안을 빠져 나가, 촉(쓰촨성)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고, 양귀비, 양국충, 고력사 등도 동행을 했다.

 

756년 7월 15일 섬서성 마외(馬嵬)에 이르러, 전란의 원인이 된 양국충을 증오하던 진현례(陳玄禮)와

병사들은 양국충 일당을 살해하고 나아가 현종에게 ‘도적의 근본’인 양귀비를 죽일 것을 요구했다.

 

현종은 부득이 ‘양귀비’에게 자살을 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양귀비’는 목을 매달아 죽었다. 현종은 그녀를 안장하고, 장안에 돌아간 후 이장을 명했지만, 예부시랑 ‘이규’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현종은 내시에게 은밀히 이장을 명했다.

 

양귀비는 어느 날 현종과

요즈음 골프와 비슷한 ‘골구’라는 놀이를 하던 중에 공이 꽃 사이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양귀비는 공을 찾다가 ‘함수화’라는 꽃을 건드렸는데, 그 꽃이 꽃잎을 말아 올리는 것을 보고

현종이 ‘귀비의 아름다움에 꽃이 부끄러워 꽃잎을 말아 올렸다’고 해서 수화(羞花)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사실 함수화는 건드리면 꽃잎을 말아 올리는 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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