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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조ㆍ당태종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

by 모모파크 202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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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조, 당태종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

당 고조 唐 高祖 | 566∼635, 재위 618~626) : 당나라 제1대 초대 황제 

자는 숙덕(叔德)이고 묘호는 고조이다.

 

 

서위(西魏)․북주(北周)시대에 활약한 이호(李虎)의 손자로, 선비족 계통의 무장이다.

아버지 병(昞)이 일찍 죽자, 7세에 당국공(唐國公)의 작위를 계승하였다.


수 문제의 총애를 받아 지방관으로서 농민반란을 진압하고,

돌궐족의 침입을 맡는 역할을 맡았다.

 

수가 붕괴될 무렵에 태원유수(太原留守)였던 그는,

둘째아들 이세민의 권유에 따라 617년에 군사를 일으켰다.

 

돌궐족의 도움을 받아 장안을 정복하고,

양제의 손자 유(侑)를 명목상 황제로 옹립했다.

자신은 당왕(唐王)이 되어 관중(關中)을 통치하였다.


이듬해 양제가 살해되자,

스스로 제위에 올라 당조를 세우고 연호를 무덕(武德), 수도를 장안으로 정했다.

 

이후 이세민의 활약으로 중원의 군웅들을 제압하고, 나라의 기틀을 만들었다.

626년에 이세민이 ‘현무문(玄武門) 변(變)’을 통해 패권을 확립하자,

그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상황(上皇)이 되었다.

 

 

당 태종 唐太宗 李世民  |  599.01.23. ~ 649.07.10 

당나라의 제2대 황제이자 돌궐 제국(동돌궐)의 제14대 가한.


휘는 이세민(李世民). 그 이름의 뜻은 제세안민(濟世安民),

즉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世와 民이 모두 일상에서 매우 많이 쓰이는 상용 한자였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피휘가 걸리게 되었다.

 

왕세충과 이세적의 경우 '세'를 공란으로 만들었으며, 절세가인도 절대(代)가인이 되었다.

관세음보살(→ 관음 보살)도 희생자 중 하나. 6부 중에 민부가 호(戶)부가 되었으니

조선시대 6조의 호조로 이어지는 이름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 외 수많은 '세'를 쓰는 단어도 '대'(代)로 고쳐졌으니(치세 → 치대. 세종(한무제) → 대종),

당의 멸망 이후 '세'라는 말과 합쳐져 세대가 되었다.

이렇듯 이세민의 경우는 피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실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이민족이 반반씩 이뤄 놓은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민족에게 수백 년간 정권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역사상 유명한 인물 중에도 한족이 아닌 사람들이 숱하다.

 

그 예를 하나 보자.

5,6세기 중국은 선비, 흉노, 저, 갈, 강족  등,

5개의 이민족의 16개의 나라를 세우며 명멸해 간 이른바 5호 16국의 혼란기였다.  

 

오랜 기간 섞여 살게 되자,

이민족과 한족은 문화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호한 체제`라는 독특한 정치, 문화 양식을 발전시켜  갔다.

 

게다가,

통혼이 성행함에 따라 광범한  혼혈이 이루어져 한족인지 이민족인지 구별하기 어려워졌다.

 

 

양자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족의  동진 정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오랜 분열을 극복하고  화북을 통일한 선비족의 북위 정권이 지나치게 한화정책을 추진하자, 

북방 요새인 6진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뒷날 수 당 통일제국을 형성하는

중추  집단인 이들은 애초에 한화정책을 반대하고 선비족의 고유성을 지킬 것을 목적으로 거병했다. 

이  때부터 중국은 다시 수당 통일제국을 향한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었다.

 

6진 가운데 하나인  무천진의 군벌 세력들은 북위를 멸망시키고,

서위, 북주의 정권을 독점하면서 배타적인 기득권 세력을 형성했다.  

 

 

 

이 군벌 집단은 선비족인 북위 정권이 지나치게 한화정책을 취하는 데 반발해서 난을 일으킨 만큼 

중국식으로 바뀌었던 성을 다시 선비족  원래의 성으로 되돌리는 등 강한 호족 성향을 띠었다. 

 

이 무천진 군벌에  속하는 인물들이 바로 수나라를 일으킨,

양견(수문제)와 당나라를 세운 이연(당고조)의 할아버지 이호 등이었다.

 

이씨 집안은 원래 대야씨라는 성을 가진  호족 집안이었다고 한다.

한화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던 북위 효문제 때 이씨로 성을 고쳤다가,

무천진 군벌의 우두머리인 우문태로부터 대야씨를 하사받았다.  

 

 

중국인이 자랑하는 수당제국의 황제들이 "오랑캐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수,당나라는 호족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이들이 고구려를 온 힘을 쏟아 침략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때마다 수양제, 당태종(이세민), 당고종은 수도에 남아  있지 않고 직접 전장에 나와 전투를  지휘했다. 

 

황제가 친히 전투를 지휘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중국의 관념에서 볼 때 대단히 드문 일로 유목민들인 호족의 관습에 따른 것이다.

 

당태종은 중국식 군주 칭호인  천자라고만 불리는 것보다

유목민의 군대를 가리키는 칸을 덧붙인 천가한이라고 불리길 좋아했다.  

 

당고종이 자기 아버지인 당태종의 후궁이었던 무조(측천무후)를 자신의 황후로  삼은 것이라든지 현종이 

자기 아들의 비였던 양옥환(양귀비)를 귀비로 맞은 것  등은 중국적인 관습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면 

있을  수 없는 불륜이었다. 

 

 

그러나 이는 북방  유목민들 사이에서는 극히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관습이었다. 

또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인 측천무후가 당나라 때에 나왔다는 것도 여권을 종중하는 

유목민의 전통이 당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고 당이라는 제국의  국제성이야말로 가장 비중국적인 것이다.  

이는 유목민의 개방성에 연유한  것이다. 

 

당의 수도 장안은,

서역과 동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각기 제 나라의 풍속과 습관을 지닌 채, 살고 있어서 마치 세계의 인종 전시장 같았다. 

 

신라의  최치원도 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종교도 페르시아의 마니 교, 유럽의 데스토리우스 교 등이 아무런 규제 없이 수입되었다. 

이도 유목민의 뿌리 깊은 종교적 개방성에서 비롯된 문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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