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가도 [ 征明假道 ]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 정부에게 강요한 내용.
곧, 일본군이 명을 침략하고자 하니 조선은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조선 선조 때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부에 대하여 중국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말.
선조 24년(1591) 3월에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의 서신 가운데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의도는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치자는 것이었으나 조선은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이것을 빌미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임진왜란 [ 壬辰倭亂 ]
조선 선조 25년(1592)에 일본이 침입한 전쟁.
선조 31년(1598)까지 7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침입하였으며,
1597년에 재침략한 것을 정유재란으로 달리 부르기도 합니다.
정유재란 [ 丁酉再亂 ]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 휴전 교섭이 결렬된 뒤,
선조 30년(1597)에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등이 14만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와 일으킨 전쟁.
이순신 등의 활약으로 큰 타격을 입은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자 철수하였습니다.
정리를 하면,
조선시대 선조((1591년) 때, 일본이 명나라를 침략 전쟁을 하기위해,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으로 가려하니, 명으로 갈 수 있게 길을 열어 달라는 내용을 조선에 보냈으나,
조선은 이를 단호히 거절을 함으로써,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진 빌미가 된 것입니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이 최초 일어난 선조 1592년 부터 선조 1598년까지 7년동안 두차례에 걸쳐 침략을 했는데,
1597년에 두번째 , 재침략을 한 것을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이라 부릅니다.
즉, 1592년 임진년에 왜구가 쳐들어오면서 발생한 임진왜란과 강화 협상으로 잠시 소강 상태가 된 후
강화 협상이 결렬되면서 1597년 정유년에 다시 전쟁이 재개되었기에 정유재란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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