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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3대 책사(장량, 제갈량, 유기)
수백 개의 나라가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진 장구한 중국의 역사.
그 역사에는 제국을 창업한 황제도, 불세출의 영웅도 그리고 위대한 책사도 몸을 담고 있다.
역사가들은 이 수많은 영웅호걸 중에서 3명의 위대한 군사전략가이자 책사를 이견 없이 뽑았다.
첫 번째 가 한나라 고조 유방이 “나의 꾀주머니 장자방”이라고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장량이다.
그는 항우와의 지난하고 불리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방의 비밀 무기였다.
장량 [ 張良 ]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공신. 진승 · 오광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항우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에서는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선견지명이 있는 책사로서 한나라의 서울을 진나라의 고지인 관중으로 정하고자 한 유경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두 번째 인물은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 유비의 명 참모이자 승상인 제갈공명이다.
촉나라가 삼국시대의 한 축으로 그 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제갈공명의 신출귀몰한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갈량 [ 諸葛亮 ]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 겸 전략가. 명성이 높아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일컬어졌다.
유비(劉備)를 도와 오(吳)나라의 손권(孫權)과 연합하여 남하하는 조조(曹操)의 대군을 적벽(赤壁)의
싸움에서 대파하고,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점령하였다.
221년 한나라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이 되었다.
세번째 인물은 바로 주원장을 도와 이민족 원나라를 멸하고,
별 볼일 없는 거지, 탁발승, 홍건적 부대장이었던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하는데 막대한 공헌을 한 유기이다.
원나라 말기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어, 원나라의 지방 관리로 임명되었지만,
상관과 마찰로 관직에 물러나고 고향에 은둔 생활한다.
남경을 함락 시켜 오국공이 된 주원장은 그 지방의 지식인들을 스스로 초빙하였다.
유기는 주원장의 초빙에 응하였고, 이후 유기는 주원장의 참모로서 활약한다.
참모로서의 유기는 홍건적의 명목적인 수령인 한림아에 대해서,
"목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모시면 어떻게 되었다"라고 말하거나
주원장이 호남의 진우량을 제외하고, 소주의 장사성을 토벌하려고 했을 때에 충고하고,
먼저 진우량을 토벌해야 할 진언하였다.
이러한 진언에 대해서 주원장도 유기를 크게 신뢰하여 "우리의 장자방" 이라고 불렸다.
유기 [劉基]
(1311년 7월 1일 ~ 1375년 5월 16일)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인물. 자는 백온(伯溫),
고향이 절강성의 청전이었던 까닭에 유청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달, 이선장과 함께 명나라의 개국 3대 공신으로, 명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책사이다.
주원장이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라고 평하였으며,
당대 사람들은 제갈공명과 비견되는 인물이라는 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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