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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권위에 굴복한 황제, 카노사의 굴욕
주교를 임명하는 서임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와 교황과의 싸움에서 교황이 승리한 사건입니다.
1077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사세가
카노사에 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칠세를 방문하여 파문을 취소하여 줄 것을 간청한 사건인데...
성(城) 앞에서 사흘 동안 빌어서 파문이 취소되었는데,
이 사건은 가톨릭교회와 교황의 권력이 절정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사상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으로
교회의 권위가 세속의 최고 권위까지 굴복시켰음을 보여주는 특정적인 보고가 되었습니다.
성직 서임권을 사이에 두고 교황과 황제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그 결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굴욕적인 사과를 한 것이
학교에서 배운 ‘카노사의 굴욕’이란 역사적 사건입니다.
※ 신성로마제국이란 명칭은 사실 구체적으로 존재한 제국의 명칭이 아니었고,
다만 동로마제국에 대응하는 국가로서,
제국의 황제 칭호는 프랑크 왕국의 왕이던 샤를마뉴 대제에게 처음 붙여졌습니다.
유럽에서는 중세 봉건사회의 확립과 함께 기독교가 서구일대를 교화하여
로마 카톨릭교회의 권위는 정신적인 것에서부터 세속적인 것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교회는 차츰 부패하고 속되게 되었으며 교황의 권위를 위협하게 되었으며,
특히, 962년 독일황제 '오토' 1세가 이탈리아을 병합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오른 후로는 교회의 임명권까지 갖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교회내부에서도 개혁운동이 차츰 적극성을 띠게 되었는데
1073 년 '그레고리' 7세가 교황의 위에 오르자, 황제에 의한 사교임명을 금한다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당시의 로마황제 '하인리히' 4세와 정면 충돌을 하게 되었다.
'하인리히' 4세는 자기의 힘만 믿고 교황의 폐위를 선언하자
교황은 이에 맞서 '하인리히' 4세를 파문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파문 조치의 효과는 놀라운 것이어서 교회는 물론 제후와 신하들까지도 황제를 등지고 교황에게 줄을 섰습니다.
당황한 '하인리히'는 굴복을 자인하고 '카노사' 에 있는 교황을 찾아갔습니다.
때마침 몰아치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교황의 성 앞에 몇 시간 동안이나 서서 용서를 빈 끝에 간신히 뜻을 이루었습니다.
이 사건이 사상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으로
교회의 권위가 세속의 최고 권위까지 굴복시켰음을 보여주는 특정적인 보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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