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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 [ plague ]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페스트균(Yersinia pestis)이 옮겨져 발생하는 급성 열성 감염병
20세기의 항생물질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이전의 몇 세기동안에는, 항상 질병들이 만연했었고,
전염병들은 끊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의 평균수명은 40세를 넘지 않았고,
유아사망비율은 오늘날보다 훨씬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세기 중반에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은,
인간의 역사에서 결코 필적할 만한 것이 없는 재앙이었다.
흑사병 이전에 발생했던 전염병들은 대개 맹렬하기는 했지만 단기간으로 끝나버리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염병들이 상대적으로 좁은 지역에 제한되어서 기승을 부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흑사병 창궐의 결과는 참혹했으며,
시칠리와 스웨덴까지 그리고 영국에서 스페임에 이르기까지의 온 유럽에 걸쳐 퍼져있었다.
이 병은 피부밑에 생기는 검은빛의 피물집에 의해서 감염이 확인되었는데,
흑사병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 물집들은 대개 고열과 강한 통증, 그리고 임파선이 붓는 현상을 동반하는데, 결국은 죽음을 초래한다.
치료될 수 없었던 폐렴이나 매독도 자주 출현하였다.
질병들의 원인이 알려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은 신의 재앙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임상적으로 흑사병은 선페스트였는데, 이것은 갈색 쥐들에 의해서 옮겨지는 벼룩이 물었을 때
혈관속으로 주입되는 바실라스 페스티스 Bacillas Pestis라는 세균때문에 발병하는 것이다.
도시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어떤 이들은 자살을 하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질병의 확산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로서
그들이 가진 것을 모두 태워버리기도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밀물처럼 밀려오던 흑사병의 물결을 막아보려는 종교적인 노력이 실패하면서,
교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였고, 그래서 '흑마술'같은 反종교적 행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흑사병에 의한 사망자는 2천 5백만에서 3천 5백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 전체 인구의 1/3정도가 1348-1350년 사이에 죽었다.
어떤 작은 도시들은 그들 주민의 90%를 잃기도 했다.
독일의 함부르크는 그들 시민의 2/3을 잃었으며, 영국은 인구의 반 이상을 잃었다.
전 가족이 몰살당하기도 했으며, 그렇지않은 가족들조차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다른 가정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다.
유럽의 경제는 극적인 변화를 하고 있었다.
심각한 노동력의 부족은 높은 임금과 제품 생산에의 높은 비용,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물가상승을 초래했다.
많은 회사들이 파산했고, 토지 소유자들은, 그들의 가게를 돌보거나,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곧잘 그들의 재산을 상실했다.
노동집약적인 봉건체제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흑사병은 유럽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킨 대변동이었다.
그것은 유럽의 경제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교회가 질병앞에서 무능력하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흑사병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앞당기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비록 흑사병이 1350년 이후에는 덜 가혹했지만, 이후에도 여러해 계속 되었다.
흑사병을 통한 희생자가 많았기 때문에, 유럽의 인구가 1347년의 수준에 도달하는 데에는
200년의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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