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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한국사ㆍ세계사56

519년간 존속해 온 "조선 왕조의 계보" 조선 왕조 계보 (1392~1910, 519년) 조선왕조실록 朝鮮王朝實錄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472년간의 역사적 사실을 각 왕 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編年體史書). 유교적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근세사회를 열었던 조선 왕조의 계보.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며 건국한 조선은 1910년 순종을 마지막으로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존속되었다. 왕조 재위기간 간략 설명 1대 태조 1392-1398 이성계, 조선의 제 1대왕 2대 정종 1398-1400 1대 태조의 둘째 아들.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세자로 책립. 3대 태종 1400-1418 1대 태조의 다섯째 아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사병을 없애고 관직 제도를 개혁함. 4대 세종 1418-1450 3대 태종의 셋째 아들. 훈민정음을 창제함... 2023. 7. 27.
족보의 기원(起原)과 족보 용어 족보의 기원(起原)과 족보 용어 ■ 족보(族譜)란? ■ 족보(族譜)의 기원(起原) ■ 보첩(譜牒)의 종류(種類) ■ 족보(族譜) 용어 ■ 족보(族譜)의 오해 ■ 족보(族譜)는 인구 대다수의 본관 조작 ■ 현대의 족보(族譜) 위조 ■ 족보(族譜) 족보(族譜)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 또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이다. 족보를 '보첩(譜牒)'이라고도 한다. 한 가문의 계통과 혈연관계를 알기 쉽게 (대부분)부계 중심으로 정리한 도표 형식의 책으로, 가문의 단합과 조상에 대한 공경이라는 유교적인 가족관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 족보의 기원(起原) 족보(族譜)는, 그 효시는 중국의 6조(六朝) 시대에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이 처음이며, 우리나라는 고려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 2023. 7. 23.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히다. 훈민정음 해례본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를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이런 전차로 어린백성이 니르고저 할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하니다.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 사람 마다 수비니겨 날로 뼌안쾨하고자 할 따르미니라 해석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자와 서로 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 이를 딱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의 쓰기를 편리하도록 함에 있느니라.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는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 2023. 7. 22.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 중국사상 단 한 사람의 여황제인 측천무후는 원래 관리의 딸이었다. 미모가 뛰어났던 그녀는 14세에 당나라 제 2대 황제 태종의 비가 되었지만, 태종이 죽자 관습에 따라 비구니가 되었다. 그런데 태종의 뒤를 이은, 아들 고종은 황태자 시절부터 아버지의 후궁인 그녀를 좋아했다. ​ 당시 후궁에서는 정비인 왕황후와 소숙비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고종의 마음이 소숙비에게로 기우는 것을 질투한 왕황후는, 절에 있는 무조(측천무후의 본명)를 궁궐로 불러들여 소숙비를 견제했다. ​ 그러나 총명한 그녀는 고종의 마음을 사로잡아, 왕황후와 소숙비를 쫓아내고 황후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곧 이어 병약한 고종을 대신, 정무를 보기에 이르렀으며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신의 .. 2023. 5. 27.
중국의 3대 책사(장량, 제갈량, 유기) 중국의 3대 책사(장량, 제갈량, 유기) 수백 개의 나라가 불꽃처럼 타오르다 사라진 장구한 중국의 역사. 그 역사에는 제국을 창업한 황제도, 불세출의 영웅도 그리고 위대한 책사도 몸을 담고 있다. 역사가들은 이 수많은 영웅호걸 중에서 3명의 위대한 군사전략가이자 책사를 이견 없이 뽑았다. 첫 번째 가 한나라 고조 유방이 “나의 꾀주머니 장자방”이라고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장량이다. 그는 항우와의 지난하고 불리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방의 비밀 무기였다. 장량 [ 張良 ]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공신. 진승 · 오광의 난이 일어났을 때 유방의 진영에 속하였으며, 후일 항우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에서는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선견지명이 있는 책사로서 한나라의 서울을 진나라의 고지인 관중으로 정하고자 한 유.. 2023. 5. 27.
중국 10대 명의 1. 황제(黃帝) : 침구(針灸, 침과 뜸)의 창시자 황제는 전설상의 중화민족의 선조이다. 현재 존재하는 은 황제가 기백(岐伯), 뇌공(雷公)과 의학에 대하여 토론한 저작이다. 이 책에서는 침을 놓는데 대한 기재와 논술이 특히 상세하다. 2. 편작(扁鵲) : 맥(脈)학의 창시자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전국시대 발해군의 정(鄭, 현재의 하북성 임구)의 사람이다. 태자 시궐이 죽은 후에 치료로 살려냈다고 한다. 또한 제나라 환후가 아직 병이 나지 않았는데, 5일후에 병이 들어 누울 것을 알아내어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에서 그를 맥학의 창시자로 높이 받들었다. 3. 화타(華陀) : 외과(外科)의 시조 화타의 이름은 부(敷)이고, 자는 무화(無化)이다. 후한말의 패(沛, 현재의 안휘성 호.. 2023. 5. 27.
중국 당나라의 제3대 황제 "당 고종 (唐高宗)" 중국 당나라의 제3대 황제 "당 고종 (唐高宗)" 중국 당나라의 제3대 황제 "당 고종 (唐高宗)" 당 고종 이치(唐 高宗 李治, 628년 7월 21일 ~ 683년 12월 27일)은 중국 당나라의 제3대 황제입니다. 당 태종 이세민의 9남이며 이름은 이치이며, 모친은 문덕황후 장손씨이며, 자는 위선(爲善)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신라와 함께 멸망시킨 황제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입니다. 당의 제3대 황제(재위 649년 ∼ 683년). 시호는 천황대성대홍효황제(天皇大聖大弘孝皇帝)로, 줄여서 홍황제(弘皇帝)라고도 부릅니다. 중국 당(唐)나라 제3대 황제(재위 649∼683). 651년 영휘율령, 653년 율소를 찬정하고, 《오경정의》를 반포 발행, 당나라 초기의 전장 제도를 마무리 지었다. 후에 황후 측천 무후가.. 2023. 5. 27.
당고조ㆍ당태종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 당고조, 당태종은 중국 사람이 아니었다 당 고조 唐 高祖 | 566∼635, 재위 618~626) : 당나라 제1대 초대 황제 자는 숙덕(叔德)이고 묘호는 고조이다. 서위(西魏)․북주(北周)시대에 활약한 이호(李虎)의 손자로, 선비족 계통의 무장이다. 아버지 병(昞)이 일찍 죽자, 7세에 당국공(唐國公)의 작위를 계승하였다. 수 문제의 총애를 받아 지방관으로서 농민반란을 진압하고, 돌궐족의 침입을 맡는 역할을 맡았다. 수가 붕괴될 무렵에 태원유수(太原留守)였던 그는, 둘째아들 이세민의 권유에 따라 617년에 군사를 일으켰다. 돌궐족의 도움을 받아 장안을 정복하고, 양제의 손자 유(侑)를 명목상 황제로 옹립했다. 자신은 당왕(唐王)이 되어 관중(關中)을 통치하였다. 이듬해 양제가 살해되자, 스스로 제위에 .. 2023. 5. 27.
중국의 4대 악녀 1. 은의 달기 ​ [주지육림]의 주인공 달기 주 왕과 달기: 중국에는 4대 악녀와 4대 미녀가 있다고 하는데 ‘달기’는 그 4대 악녀 중 한 사람이다. ​ ‘달기’에 관한 기본 사료로서는 《사기 은본기》를 들 수 있는데, 그 기록에 따르면 ‘달기’는 은 왕조 말기(BC 11세기경)에 ‘주(紂)’왕의 총애를 받았다. ‘주’왕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악사 ‘사연(師涓)’을 시켜서 음탕한 음악인 북도지무(北鄙之舞)와 미미지악(靡靡之樂)을 만들게 했다. ​ 술을 채운 연못에 고기를 걸어 둔 숲[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들어서 나체의 남녀들로 하여금 서로 뒤쫓게 하는 등 날마다 음탕한 생활을 했다. 《열녀전(列女傳) 잉첩전(孽嬖傳)》의 은주달기(殷紂妲己) 조에는 ‘달기’는 포락(炮烙)이라는.. 2023. 5. 27.
중국의 4대 미녀 중국의 4대 미녀하면, 서시,왕소군,초선,양귀비를 일컫습니다. 오늘은 중국의 4대 미녀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겠습니다. 침어낙안(沈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 沈魚落雁 물고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 기러기는 땅 밑으로 떨어지며 閉月羞花 달은 구름 뒤로 얼굴을 가리고,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노라 천하절색(天下絶色)의 미모(美貌)! 경국지색(傾國之色),경국경성(傾國傾城) 1. 서시(西施)-침어(浸魚) 2. 왕소군(王昭君)-낙안(落雁) 3. 초선(貂蟬)-폐월(閉月) 4. 양옥환(양귀비,楊貴妃)-수화(羞花) 1. 월의 서시 ​범려와 서시 : 서시(西施 생년 미상)는 본명이 시이광(施夷光)이다. 저장성 ‘사오싱’ 출신이며, ​춘추전국시대(BC770~BC221)의 서시(西施)는 춘추 말기의 월(越)나라 여인입니다... 2023. 5. 27.
중국의 높고 험준한 옛길 "차마고도" 차마고도 茶馬古道 차(茶)와 말(馬)을 교역하던 중국의 높고 험준한 옛길.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이며 이 길을 따라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갔습니다. 실크로드와 함께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로 꼽힙니다. 중국 서남부에서 윈난성[雲南省]·쓰촨성[四川省]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무역로이며, 윈난성·쓰촨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했다고 하여, 차마고도(茶馬古道)라는 이름이 붙였습니다. 한나라 이전인 기원전 시기에 중국 서남부 윈난성·쓰촨성에서 생산된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기 위해 형성되었고, 당·송 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됐습니다. 1000년 전 티베트 불교가, 티베트의 주도인 라싸[拉薩]에서 윈난·쓰촨 지역으로 전래되기도 했.. 2023. 5. 26.
'중국 4대 미녀' 양귀비 본명 '미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 4대 미녀라고 칭송받는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 등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양귀비에 대한 뒷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원래는 비만이었다는 이야기부터, 본명 이야기까지 다양합니다. 양귀비의 본명은 '양옥환' '양귀비 꽃'을 연상시켰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이미지 이지만, 옥을 소중히 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는 현종의 열세번째 아들인 수왕이모의 비 였으나, 빼어난 미모로 아비지인 현종의 눈에 들어 현종의 귀비가 됩니다. 양귀비는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웠던 인물로 평가되지만, 사실상 현재의 미인상과는 다르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당시 발을 묶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전족' 풍습으로 인해 발이 아주 작았으며, 160초반대의 키에 60k.. 2023. 5. 26.
며느리 양귀비에게 반한 당현종 며느리 양귀비에게 반한 당현종 측천무후가 죽자 이번에는 중종의 황후인 위씨 일족이 권세를 휘둘렀다. 당 황실의 운명은 다시 위태로워졌다. 중종의 손자였던 23세의 이융기는 이를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 중종이 죽은 지 18일 만에 이융기는 젊은 관리들을 동원, 쿠테타를 일으키고 위씨 일족을 주살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예종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황태자가 되었다. 이가 바로 현종이다. 당 황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등장한 현종의 치세는 중국 4000년 역사상 다시없는 전성기여서, 그의 연호를 딴 "개원의 치`는 태평성대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였다. ​ 인구는 날로 늘어 양귀비가 등장하기 직전의 한 통계에 따르면, 4,890만 9,800명을 헤아렸다. ​ 현종은 웅대한 지략가이기도 했지만, 음악에 .. 2023. 5. 26.
"군함도"라 불리는 일본의 섬 "하시마 탄광" ㆍ 군함같이 생겼다고 불리는 군함도 ㆍ 일본 나가사키현 하시마에 있는 탄광 ㆍ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되어 노동력을 수탈당했던 곳 "군함도"라 불리는 일본의 섬 "하시마 탄광" 하시마(端島)는 일본 나가사키(長崎)항에서 18km 떨어진, 남북 480m, 동서 160m의 작은 섬으로,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로 불리기도 합니다. 일본 침략전쟁 당시 조선인 징용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등 주변국들에겐 침략 피해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1890년 사들여 해저탄광을 개발했는데, 이 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 탄광이었습니다. 탄광 안은 좁고 온도가 45도를 넘었고 유독가스가 수시로 분출되기도 하며, 작업 도중 해수가 갱내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하는 등 .. 2021. 5. 20.
최고의 군사 고전 손무의 "손자병법" 동양 군인들이 읽어야할 병서 중 하나인 손자병법. 오늘은 "손자병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병서는 그 시대의 경험과 발전된 전법이 집대성된 책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손무의 "손자병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늘날까지 읽히는 최고의 군사 고전입니다. 춘추시대의 약소국이었던 오나라는 손무가 전군의 지휘권을 맡으면서 막강한 군사력을 형성하게 되어 일약 강국이 되었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이 말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로 손자병법에 전해지는 문장입니다. 노소를 막론하고 상황에 맞춰 잘 인용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손자병법은 시대를 초월하여 단지 병서로써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의 처세학으로도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손자병법은 .. 2021. 5. 1.
측천무후처럼 여제가 되려다 실패한 그녀들 Top3 측천무후(무측천)처럼 여제가 되려고 도전하다가 실패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당나라 시대의 여인들이었고, 위황후를 제외하면 모두 황녀의 신분이라는 것입니다. 측천무후처럼 여제가 되려다 실패한 그녀들 Top3 1.위황후(韋皇后/생몰년:660년~710년, 향년 50세) 위황후는 측천무후의 며느리이자 당중종의 아내로 의덕태자와 안락공주의 어머니 입니다. 위현정(韋玄貞)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린나이에 궁에 입궁하여 궁녀가 되었다가 영왕(英王)이었던 당중종의 총애를 받고 후궁이 됩니다. 그리고 683년에 그의 정실부인(황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시어머니 측천무후처럼 여제를 꿈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여제, 딸인 안락공주는 황태녀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인 당중종이 허락하지 않자 위황후는.. 2021. 3. 31.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청ㆍ일 전쟁" 청일전쟁 [ First Sino-Japanese War, 淸日戰爭 ] 1894년 6월∼1895년 4월 사이에 청(淸)나라와 일본이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다툰 전쟁. Between June 1894 and April 1895, the Qing Dynasty and Japan fought for control of Joseon. 타이완 사건 일본은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성공시킨 이후 근대화를 이루며, 제국주의적 대외진출을 도모하였습니다. 1871년에는 청과 수호조약을 체결하고 화친관계를 맺었지만, 하지만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두고 대립하던 청·일 양국간의 분쟁은 계속 발생하였습니다. 일본은 1874년 류큐인(琉球人)이 타이완인(臺灣人)에 의해 살상된 것을 계기로, 타이완에 출병하여 청의 간섭을 받지 않고 .. 2021. 3. 3.
정명가도 [ 征明假道 ]ㆍ임진왜란 [ 壬辰倭亂 ]ㆍ정유재란 [ 丁酉再亂 ] 정명가도 [ 征明假道 ]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 정부에게 강요한 내용. 곧, 일본군이 명을 침략하고자 하니 조선은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는 것입니다. 조선 선조 때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부에 대하여 중국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한 길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말. 선조 24년(1591) 3월에 통신사 편에 보내온 도요토미의 서신 가운데 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의도는 조선과 동맹을 맺고 명나라를 치자는 것이었으나 조선은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이것을 빌미로 임진왜란이 일어났습니다. 임진왜란 [ 壬辰倭亂 ] 조선 선조 25년(1592)에 일본이 침입한 전쟁. 선조 31년(1598)까지 7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침입하였으며, 1597년에 재침략한 것을 정유재란으로 달리 부르기.. 2021. 3. 1.
콜로세움에서 벌어진 대규모 모의해전 "나우마키아" 나우마키아 [ Naumachia, Naumachie] 로마시대의 콜로세움 안에서 벌어진 대규모적인 모의해전(模擬海戰). 로마에서 시저(Caesar) 집권 당시인 BC 46년에 거행한 모의해전(模擬海戰) 가장 유명한 수상 모의해전은 클라디우스(Cladius) 황제가 거행한 것으로 19,000명이 참가하였습니다. 모의해전에 참가하는 사람은 전사(戰土)와 포로나 죄인이었는데, 이 경기는 국방 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다만 황제나 귀족의 오락이었습니다. 다시말하면, 나라의 안보를 위해 국방 사상을 고취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나 귀족의 오락 목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해전에 참가한 사람은 전사, 포로, 죄인이었습니다. 콜로세움 로마의 상징인 거대한 건축물 콜로세움은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짓기 시.. 2021. 2. 24.
창업수성 創業守成 창업수성 創業守成 나라를 세우는 일과 이를 지켜 나가는 일이라는 뜻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만, 이룬 것을 지키는 것은 어려움을 이르는 말입니다. 創 : 시작할 창, 業 : 일 업, 守 : 지킬 수, 成 : 이룰 성 창업ㆍ수성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맹자였으며 두 가지 모두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당나라를 크게 중흥시켜 '정관의 치[貞觀之治]'를 연 태종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임금으로 꼽히는 인물인데 하루는 그가 좌우 신하들에게 "창업과 수성 중 어느 것이 어려운가"라고 물었습니다. 재상 방현령房玄齡은 창업이 어렵다고 답했으나 또 다른 재상 위징魏徵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예로부터 제왕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천하를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일한 생활에 빠져 천하를 잃는 예가 많습니다.. 2021. 2. 15.
어우야담 [ 於于野譚 ] 어우야담 [ 於于野譚 ] 서프라이즈를 즐겨보는 일인이지만, 매번 나오는 우화중에 ≪어우야담≫에 속해있는 이야기를 자주 접합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조선중기에 유몽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야담ㆍ설화집으로 나옵니다. 어우야담 [ 於于野譚 ] 조선 중기에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이 편찬한 야담 설화집. 유몽인은 광해군 10년(1618)부터 은둔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때에 야담(野譚)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1622년에 ≪어우야담≫ 10여권을 완성하게 됩니다. 그런데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남으로 인해 유몽인은 역률(逆律)로 피체(被逮)되어 아들과 함께 주살(誅殺) 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문집(文集)과 함께 ≪어우야담≫도 흩어지게 되어 이본(異本)이 20여종이나 됩니다. 초록 번역한 구황실본(舊皇室本).. 2021. 2. 9.
사탄의 우상 "몰렉" 몰록(Moloch)은 밀감(Milcom), 말감(Malcham)과 같은 말입니다. 이것들은 바벨론에서 사탄이 만든 우상으로 암흑세계의 명계(冥界)의 왕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두 딸에게 근친 상간으로 얻은 두 족속인, 모압족속과암몬 족속의 국가 신으로 태양과 천공의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몰렉은 놋 쇠로 만든 염소(황소)머리에 인간의 몸을 하고 손을 펼친채 앉아 있는데, 가슴부분에는 아궁이가 있고 여기에 불을 지펴 동상이 새빨갛게 달아 오르면이 우상에게 살아있는 아기를 안기어 불에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인신공양은 가나안의 후손 시돈(페니키아)로 흘러 들어가 그의 형제국인카르타고와 그들의 식민지 국가들로 퍼져 나갔으며, 바벨 땅에서 시작된 사탄 종교는 이스라엘의 솔로몬 시대.. 2021. 1. 29.
로마의 뛰어난 정치가ㆍ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 영어단어 시저(Caesar)는 독일에서는 카이저(kaiser), 러시아에서는 차르(czar) 라고 하지만 모두 황제를 뜻하는 말입니다. 황제 중에서도 실권을 장악하고 마음껏 휘두르는 전제군주나 독재자에게 이러한 호칭을 붙입니다. 이 절대적인 힘을 가진 황제를 뜻하는 시저라는 단어는 실은 로마의 정치가였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카이사르라는 이름이 각국에서 다르게 발음되며 모두 황제를 가리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황제가 아니었습니다. 배경 - 안정기의 공화정 로마 기원전 616년에 촌락 같은 작은 도시에서 출발한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에트루리아인은 약 100년간 로마.. 2020. 12. 20.
소크라테스의 사과 [소크라테스의 사과] 어느 날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는 그들을 사과나무 숲으로 데리고 갔다. 때마침 사과가 무르익는 계절이라 달콤한 과육 향기가 코를 찔렀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숲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며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씩 골라오도록 했다. 단, 다시 뒤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선택은 한 번뿐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학생들은 사과나무 숲을 걸어가면서 유심히 관찰한 끝에 가장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열매를 하나씩 골랐다. 학생들이 모두 사과나무 숲의 끝에 도착했다. 소크라테스가 미리 와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웃으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모두 제일 좋은 열매를 골랐겠지?” 학생들은 서로의 것을 비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 2020. 12. 7.
순수한 자연주의자 "모파상의 묘비명" 순수한 자연주의자 ㆍ 기 드 모파상 감수성의 억제나 대상의 치밀한 연구는 기 드 모파상에게는 조금도 힘드는 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에게서 자연주의의 가장 순수한 표현을 찾지 않으면 안 됩니다. 노르망디 사람인 기 드 모파상은, 참을성 있는 관찰과 문체의 힘을 가르쳐 준 스승의 지도 아래서 교육을 받았으며, 해군부에 이어 교육부에서 근무한 모파상은 말없이 공부했습니다. 그의 창작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10년간에, 〈비계 덩어리〉(Boule-de-Suif, 1880)와 같은 단편집, 또는 〈여자의 일생〉(Une Vie, 1883), 〈벨라미〉(Bel-Ami, 1885), 〈죽음처럼 강하다〉 (Fort comme la Mort, 1889)와 같은 장편 소설 등 27권을 써냈습니다. 19세기 후반의 .. 2020. 12. 6.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아들이 동성인 아버지에게는 적대적이지만 이성인 어머니에게는 호의적이며 무의식적으로 성(性)적 애착을 가지는 "복합감정" 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지며 어머니에 대해서는 애정을 품는 아들의 심정, 특히 성적 요소를 가진 것. 이로 말미암은 복잡한 심정을 통틀어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고 합니다. 이 말의 근원인 '오이디푸스'는 희랍신화 시대의 '테바이'왕이었다. 그는 '라이오스'왕과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 태어났는데 그 아이를 두고 '아폴로' 신전에서는 "장차 이 아이가 크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놀란 '라이오스' 왕은 이 아이를 죽이려고 했으나 그의 어머니는 몰래 산중에 버리고 만다. 산중에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요행히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 2020. 12. 6.
복수를 이루기 위해 온갖 괴로움을 참고 고생한 "와신상담" 와신상담 ( 臥薪嘗膽) 원수를 갚기 위해 이루기 위한 고생을 감내한 "와신상담" 臥 薪 嘗 膽 누울 와 섶 신 맛볼 상 쓸개 담 와신상담은 복수를 이룩하기 위하여 갖은 고생을 감내함을 말합니다. 주나라의 경왕 24년 (BC 496),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 왕 구천과의 싸움에서 패하였습니다. 합려는 적의 화살에 손가락을 상했는데 그로 인해서 죽었습니다. 그는 임종하는 자리에서 태자 부차에게 유언하기를 기필코 월나라에 복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왕위에 오른 부차는 밤낮으로 아버지의 유언과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원한을 풀어드리려는 굳은 결의에서 밤마다 섶에서 자며, 아버지의 유한을 되새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방에 드나드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2020. 11. 3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 팔만대장경ㆍ경판고" 대장경이란 무엇인가? 대장경이란 불교교리를 종합편찬한 성서로서 일체경(一切經)·삼장경(三藏經) 또는 장경(藏經) 등으로 부르기도 하며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삼장으로 구성된다. 삼장이란 인도의 고대언어인 산스크리트語(梵語)의 Tripitaka를 한문번역한 말로서 세 개의 광주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경장이란 부처님께서 따르는 제자와 중생을 상대로 설파하신 내용을 기록한 "경"을 담아 놓은 광주리란 뜻이고, 율장은 제자들이 지켜야 할 논리의 조항과 그밖에 공동생활에 필요한 규범을 적어놓은 "율"을 담은 광주리란 뜻이다. 논장은 위의 "경"과 "율"에 관하여 스님들이 읽기 쉽게 해설을 달아 놓은 것으로서 " 논"을 담은 광주리란 뜻이다. 팔만대장경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2.. 2020. 11. 27.
교황의 권위에 굴복한 황제, 카노사의 굴욕 교황의 권위에 굴복한 황제, 카노사의 굴욕 주교를 임명하는 서임권을 둘러싸고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와 교황과의 싸움에서 교황이 승리한 사건입니다. 1077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사세가 카노사에 있던 교황 그레고리우스 칠세를 방문하여 파문을 취소하여 줄 것을 간청한 사건인데... 성(城) 앞에서 사흘 동안 빌어서 파문이 취소되었는데, 이 사건은 가톨릭교회와 교황의 권력이 절정에 이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이 사상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으로 교회의 권위가 세속의 최고 권위까지 굴복시켰음을 보여주는 특정적인 보고가 되었습니다. 성직 서임권을 사이에 두고 교황과 황제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그 결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굴욕적인 사과를 한 것이 .. 2020. 11. 26.
음탕한 여자의 이름 "어우동" 음탕한 여자의 이름 "어우동" 현대엔 어째서인지 기생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조시대 어우동은 엄연히 양반 가문 출신이며 기생은 아닙니다. 연산군 일기에 어우동을 '구마'라고도 칭한 것을 보아 본명은 박구마(朴丘麻)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가족 관계로는 아버지는 승문원 지사 박윤창(朴允昌). 어머니는 정귀덕(鄭貴德). 오빠는 박성근(朴成根) 등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 당시 금기에 가까운 간통 사건을 일으켰기에 가문에서 파문되어 성을 뺀 자신의 별명인 어우동(於宇同)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440년경 충청도 음성현(현 충북 음석군)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곱게 자란 뒤 왕손인 태강수 이동이란 자와 혼인을 했는데 이동은 아내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동은 이혼을 할 속셈으로 아내 어우..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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