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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한국사ㆍ세계사ㆍ토막상식

조선시대 임금들의 수명 및 재위기간

by 모모파크 202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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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임금들의    수명 및 재위기간  

조선의 제1대 왕

태조

이 성계

나이

 72세

재위기간

6년 2개월 (재위 1392∼1398)

사망원인

중풍

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였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朝鮮)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이성계는 본래 앓고 있던 병이 있던것은 아니였으나  아들놈들끼리 옥좌를 둘러싼 두차례의 내란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후 태사왕으로 물러났지만 중풍이 악화되어 결국 붕어하게 된다.

그래도 이성계는 조선임금들중 장수한편에 속한다.

처음부터 왕이 아니였고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된터라 왕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을것이다.

왕위에 오를때는 이미 57세로 환갑을 바라보고 있을때였다.

 

조선의 제2대 국왕
국왕 정종
나이 62세 
재위기간 2년 1개월
사망원인 노환, 자연사 

 조선 제2대 왕(재위 1398~1400). 제1차 왕자의 난이 수습된 뒤 왕위에 올랐으며,

재임 2년 후 보위를 이방원에게 양위하였고 상왕으로 물러났다.


원래는 옥좌에는 욕심이 없었으나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개국 공신들을 대거 숙청하고 

장남이였던 진안대군 이방우가 아버지가 역적이 된 사실을 부끄러워하며 산에 은거하자 

둘째였던 정종을 왕으로 앉힌다. 

한국사 대표적인 꼭두각시 군주중 한명이다.
이후 약 2년만에 이방원에게 자리를 내어주면서 상왕이 되었다.
그리고 편하게 여생을 즐기며 천수를 누리다 자연사했다.  

 

조선의 제3대 왕
태종 이방원
나이 54세
재위기간 17년 9개월 (재위 1400∼1418)
사망원인 폐렴

선 제3대 왕(재위 1400∼1418). 아버지 이성계 휘하에서 구세력 제거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세자책봉에 불만을 품고 정도전 등을 살해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즉위 후, 의정부(議政府),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설치하는 등 관제개혁을 통하여 왕권을 강화하였고

최고의 법사(法司)인 의금부(義禁府)도 설치하였다.

 

태종은 형제들을 죽여가면서 옥좌를 차지한 대표적인 냉혈군주로 왕조의 기틀을 다졌던 왕이다.
태종은 재위 13년부터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맨손으로 물건을 집을수도 없을정도였다.

 

이후 몇년뒤 사냥을 나갔다 복귀한뒤 갑자기 고열과 혼수상태에 빠져 급성 감염성 폐렴으로 붕어한다. 

 

조선의 제4대 왕
세종 세종대왕 이도
나이 52세
재위기간 31년 6개월
사망원인 당뇨, 풍질, 부종, 임질 등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대표적인 위인으로 세종대왕은 온갖 질환을 앓고 있었다. 

말기로 가면 눈도 안보여 가까이에 있는 신하들도 구분을 못했다.


고기반찬을 매우 좋아했으나 이게 반대로 비만의 이유가 되어 운동은 하지 않고 

하루종일 앉아 책만 보다가 온갖 성인병이 걸린것으로 추정된다.

 

실록에만 나오는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허리디스크,비뇨장애,임질,수전증,풍질,당뇨합병증 등이 있다.

 

조선의 제5대 왕
문종 이향
나이 37세
재위기간 2년 (재위 1450∼1452)
사망원인 등창

 조선의 제5대 왕(재위 1450∼1452). 세종의 맏아들. 약 30년 간 세자로 세종을 보필했다.

《동국병감》,《고려사》등이 편찬되었다.

병제를 정비하여 3군의 12사를 5사로 줄였고, 병력을 증대시켰다.

 

문종이 처음부터 몸이 허약한 왕이 아니였으나 

옥좌에 앉자 거짓말처럼 세종 말기못지 않은 환자가 되어버렸다.


왜 갑자기 쇠약해졌는지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있는데 

문종은 지극한 효자로 어머니였던 소헌왕후가 세상을 뜨자 곁에서 지극한 3년상을 치렀고 

이후 얼마 되지않아 세종대왕도 붕어하니 문종의 몸이 버틸리가 만무했다.


왕위에 오른지 2년, 결국 등에난 종기로 인해 붕어하니 왕세자로 35년 왕으론 2년밖에 못산 비운의 왕이였다.

  

조선의 제6대 왕
단종 이홍위
나이 16세
재위기간 3년 (재위 1452∼1455)
사망원인 독살 or 타살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다.

이후 단종 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처형되고 서인으로 강등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였다.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정통성이 가장 왕이였으나 숙부의 왕위욕심에 희생된 비운의 소년국왕이다.
단종이 왕위에 오를때는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혼자였을뿐이였다. 


결국 이것은 왕실의 큰 어른이 없으니

다른 종친을 제어할 존재가 전무했고 세조의 쿠데타로 이어진다.


이후 단종복위운동까지 실패하자 단정은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갔고 거기서 독약을 받아 죽었다.

 

야사에는 독약을 올리던 신하가 차마 사약을 올리지 못한채 

단종 앞에 사약을 두고 그대로 엎드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야사에는 활의 줄로 목을 졸라 죽였다고도 전해진다.  

 

조선의 제7대 왕
세조   이유
나이 50세
재위기간 13년 2개월 (재위 1455~1468)
사망원인 문둔병

조선 제7대 왕(재위 1455~1468). 세종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수양대군에 봉해졌다. 

문종이 사망하자 어린 단종을 제거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하였다.


세조는 문종이 살아있을때만해도 쥐죽은듯이 조용히 지냈으나  
나이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르자 쿠데타를 결심한다  

그러나 세종이 단종을 데리고 다니며 신하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어놓은 상태라 

세조의 지지기반은 굉장히 약했었다. 그 누구도 세조가 쿠데타를 일으키리라 생각을 못했다  

결국 최측근이던 김종서를 죽이러 갈때도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자  
본인이 직접 부하들을 통솔하여 김종서를 쳤고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 

이후 세조는 죽을때까지 정신질환과 불면증 피부병에 시달리다 붕어한다. 

 

조선의 제8대 왕
예종 이황
나이 19세
재위기간 1년 3개월 (재위 1468∼1469)
사망원인 급사

조선 제8대 왕(재위 1468∼1469)으로 재위 13개월 만에 죽었다.

재위 중 직전수조법(職田收租法)을 제정하여 둔전(屯田)의 민경(民耕)을 허락하였다.


급사하기 전날에는 "이제 종기가 좀 나아진거 같다" 라고 했지만 바로 그 다음날 급사하고 만다.   
그러나 엄연히 돌연사이기때문에 꼭 종기때문에 급사했다고 보긴 어렵다 . 


예종 역시 급사한것때문에 복상사로 죽었다고 설이 돌지만 정사는 아니다.   
예종도 효종처럼 사망 플래그가 있었는데 죽기 2~3달 전에 궁을 지키던 갑사 둘이서 새벽에 까치가 울자  

"까치가 밤에 울면 그 집 주인이 죽는다고하더라, 그런데 이 궁 주인 누구겠어?"  
"주상 전하잖아. 곧 위태로워질 거야"  
"그럼 누가 임금 되는데?"  
"영순군이 있잖아" 

라고 얘기를하다 주위에 있던 동료 한 명이 고자질하는바람에 둘다 능지처참을 당했다.   
신하들은 영순군도 죽이자곤 했으나 예종이 끝까지 거부해 무사할 수 있었다.   

 

조선의 제9대 왕
성종 이혈
나이 37세
재위기간 25년 (재위 1469∼1494)
사망원인 폐결핵, 합병증 

조선 제9대 왕(재위 1469∼1494).

조선시대때 신하들은 최고 명군을 꼽을땐 세종대왕이 아닌 성종을 뽑았다고 한다.   

 

성종은 술을 좋아했고 섹스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리고 종기,설사,두통,요통등 다양한 질병을 앓다 폐결핵과 합병증으로 붕어한다.   

번외로 폐비윤씨는 신하들이 앞장서서 폐위한거 같지만 실제로는 개빡친 성종이 주도해서 죽였다.   
오히려 처음에는 신하들이 말렸고 2번째때 신하들도 등을 돌려 끌어내려졌다.   

 

이후 연산군은 진실을 알게되자 많은 대신들이 갈려나갔다.

 

성종은 재위 25년째인 1494년 음력 12월 24일에 38살의 나이에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사망했다.

죽은 후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선릉(宣陵)에 매장되었다.

 

조선의 제10대 왕
연산군 이융
나이 29세
재위기간 11년 (재위 1494∼1506)
사망원인 역질, 화병

조선 제10대의 왕(재위 1494∼1506).

많은 신진 사류를 죽이는 무오사화를 일으키고 생모 윤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윤필상 등 수십명을 살해하였다.

또한 경연을 없애고 사간원을 폐지하는 등 비정(秕政)이 극에 달하여 결국 중종반정에 의해 폐왕이 되었다.


조선 최고 폭군으로 어머니 폐비윤씨의 죽음을 알게되자  미친듯이 폭주해 신하들을 학살했으며,

전국에서 여자들을 모아 섹스에 미쳐  정사를 멀리하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었다 .


이후 강화도로 유배를 갔고 유배생활중 아들의 시사 소식을 듣고 식음을 전폐하며 괴로워하다 죽었다 .  

 

조선의 제11대 왕
중종 이역
나이 56세
재위기간 38년 (재위 1506∼1544)
사망원인 노환

조선 제11대 왕(재위 1506∼1544).

연산군 시대의 폐정을 개혁하였으며, 조광조 등의 신진 사류(士類)를 중용, 왕도정치를 시도하였으나,

지나치게 이상적인 개혁방법이 훈구파의 반발을 초래,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신진사류를 숙청하였다.

 

이후 신사무옥(辛巳誣獄), 삼포왜란 등으로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였다.

 

중종반정이 말만 중종반정이지 중종이 주도한것도 아니고 신하들이 주도해서 택군하여 올린 왕이다.  
그래서 신하들의 힘이 굉장히 강했으며 이렇다할 질병은 없고 약한 왕권속에서 노환으로 붕어한다.   

 

그리고 성종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때 능이 도굴되어 시신없는 무덤이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측에서 수교를 요청해올때 신하들은 

"저 미개한것들이 그렇죠 뭐 일단은 그냥 수교하죠"

라는 의견이 많아 결국 다시 수교를 하게된다.

 

당시 에도막부에선 전쟁을 일이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덤을 박살을 내버리며, 

조선과 수교를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던터였다. 

 

조선의 제12대 왕
인종 이호
나이 30세
재위기간 9개월 (재위 1544~1545)
사망원인 거식증, 합병증 

조선 제12대 왕(재위 1544~1545).

기묘사화로 폐지되었던 현량과를 부활하고 기묘사화 때의 희생자 조광조 등을 원통함을 풀어주는 등

어진 정치를 행하려 하였으나, 병약하여 포부를 펴지 못한 채 31세에 사망하였다.


역대 27명의 국왕중 가장 재위기간이 짧으며 1년도 채 되지 않는다.  
즉위했을때부터 병약하였고 문정왕후의 도가 넘은 압박속에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병약한 이유는 세자시절때 중종이 앓아눕자 5개월동안 지극정성으로 예법을 행하다.   
거식증까지 걸려 결국 즉위하고 9개월만에 붕어한것이다. 

 

조선의 제13대 왕
명종 이환
나이 33세
재위기간 21년 (재위 1545∼1567)
사망원인 울화병, 급사

조선 제13대 왕(재위 1545∼1567).

중종의 둘째 적자(嫡子)이자 인종의 아우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 하였다.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이 을사사화를 일으켰으며 문정왕후 사후, 선정을 펼치려 노력하였다.

문정왕후의 치마폭속에서 벗어나질 못한채 20여년간 압박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문정왕후가 죽자 드디어 기를 펴고 윤원형등 일파를 대거 숙청하나 급사한다.   

 

자신의 뜻을 펼치기엔 2년은 너무나도 짧은 기간이였다.   
기록에는 울화병이나 소화불량등을 앓고 있다고 나온다.

 

조선의 제14대 왕
선조 이연
나이 55세
재위기간 40년 (재위 1567∼1608)
사망원인 울화병, 자연사 

조선 제14대 왕(재위 1567∼1608).

처음에는 많은 인재를 등용하여 국정 쇄신에 노력했고 여러 전적(典籍)을 간행해 유학을 장려했다. 

 

후에 정치인들의 분열로 당파가 나타나 당쟁 속에 정치기강이 무너져 혼란을 겪었다. 

재위 후반에 왜군의 침입(임진왜란 1592~1598)과  건주 야인(여진족)의 침입도 받았다.


선조는 최초의 방계 혈통의 왕으로 임진왜란으로 유명한 왕으로  
본래 앓고 있던 울화병이 임진왜란 정유재란등을 거치며 더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실어증에 걸리며 말년엔 새벽에 쓰러지기도 하다 향년 55세로 붕어한다. 

 

조선의 제15대 왕
광해군 이연
나이 55세
재위기간 40년 (1608∼1623)
사망원인 울화병, 자연사 

광해군(光海君, 재위 1608∼1623) 동안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정적들을 대상으로 수 차례 옥사를 일으켰고,

외교에서는 실리외교를 선택하였다.

 

재위 15년간은 대북파가 정권을 독점하였다.

때문에 이에 불만을 품은 서인 김류(金瑬)·이귀(李貴)·김자점(金自點) 등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광해군으로 강등되어 강화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에 이배되었다.

 

이런 그의 정치적 태도는 결국 인조반정으로 축출되기에 이르렀고 끝내 묘호조차 갖지 못한 군주가 되었다.

 

뒷날 인조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책략과 명분에 의해 패륜적인 혼군(昏君)으로 규정되었지만,

실은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때문에 같은 반정에 의해 희생된 연산군과는 성격을 달리해야 한다.

묘호는 광해지군묘(光海之君墓)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있다.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 이종
나이 53세
재위기간 26년 (재위 1623~1649)
사망원인 화병 노환 

조선의 제16대 왕(재위 1623~1649).

광해군 때의 중립정책을 지양하고 반금친명 정책을 썼다.

 

난국 속에서도 군제를 정비해 총융청 · 수어청 등을 신설했으며,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여러 곳에 진을 신설했다.

 

《동사보편》등의 서적도 간행되었고, 송시열 · 송준길 등의 대학자·대정치가가 배출되기도 했다.


병자호란으로 대중에게 너무나 유명한 왕으로 잘못된 상식으론  병자호란이 인조의 친명배금

때문에 일어났다고 알려져있지만 본래 이유는 청나라의 식량난 때문이였다.

   
청나라는 두차례 침입으로 조선에게 대거 약탈하여 기사회생하였고

이때 인조는 삼배구고두레까지 올리며 대굴욕을 당했다.


실제로 그 삼배구고두레는 머리를 땅에 있는 힘껏 빻는 그런게 아니므로 피가 났다라는 기록은 없다.   
이후 소현세자에게까지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고 임기내내 스트레스와 홧병에 시달리다 붕어한다.  

 

조선의 제17대 왕
효종 이호
나이 39세
재위기간 10년 (재위 1649∼1659)
사망원인 어의의 실수

조선 제17대 왕(재위 1649∼1659).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서의 8년간 볼모생활 중 그 설욕에 뜻을 두어, 즉위 후 은밀히 북벌계획을 수립,

군제의 개편, 군사훈련의 강화 등에 힘썼다.

 

그러나 북벌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청나라의 강요로 러시아 정벌에 출정하였다.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했고, 상평통보(常平通寶)를 화폐로 유통시키는 등 경제시책에 업적을 남겼다.

 

효종은 청나라에게 당한 수모를 겪기위해 북벌론을 주장했던 임금으로  효종의 얼굴에 난 종기의 치료를 놓고

침을 놓아야한다는 의견과 놓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던중 어의였던 신가귀가 침을 놓고

피를 빼내 상태가 호전되는듯이 보였으나  수전증때문에 혈관을 잘못 찔러 과다 출혈로 붕어한다.

   
그러나 신가귀는 현종의 배려덕분에 능지처참은 면하고 교수형으로 죽는다 

 

조선의 제18대 왕
현종 이연
나이 33세
재위기간 15년 (재위 1659∼1674)
사망원인 등창 및 합병증

조선시대 제18대 왕(재위 1659∼1674). 효종의 아들이다.

 

효종의 상례(喪禮)시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服喪問題)에 서인의

기년설(朞年說:1년설)을 채택하고, 어머니 인선왕후가 죽자 2차 복상문제에서 남인의 기년제를 채택, 

재위 중 남인과 서인의 당쟁이 계속되어 국력이 쇠퇴해졌다. 

 

현종의 고질병은 안질과 피부병이였는데 재위기간 내내 온천을 찾았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등창의 합병증인 패혈증으로 붕어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왕실에선 후손들이 귀해지기 시작한다.   
그마저 조선말기에는 왕들의 정통성이 이게 유교국가가 맞나 싶을정도로 개족보가 되었다.   

 

헌종대에 후사가 끊기자 철종을 앉혔는데 철종과 헌종은 7~8촌 지간의 먼 친척이였고  
 또 그다음인 고종과 철종도 7~8촌지간이으로 먼 친척이였다.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 이순
나이 58세
재위기간 45년
사망원인 심화증, 등창, 안질등

조선 제19대 왕. 대동법을 전국에 실시하여 실효를 거두었으며

임진왜란 · 병자호란 이후 계속된 토지사업을 추진해 완결을 보았다.

 

주전을 본격적으로 실시해 상평통보를 주조, 중앙관청 및 지방관청 등에 통용하도록 했다.

영토 회복 운동을 전개했고 금위영을 추가로 설치하여 5영체제를 완결했다.


강력한 정통성으로 강한 왕권을 가진 왕이였다.  
무엇보다 원자-세손-세자를 거친것은 숙종과 단종뿐이였다.

(문종이 태어날땐 세종대왕이 왕세자가 아니였으므로 원자가 아니였다)


허나 강한 왕권을 휘둘렀던것도 강한 정통성도 있지만 그만큼 성격이 불같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때문인지 심화증 등창 안질 포만증 노인병등 여러 질환에 시달리다 죽었다. 

 

조선의 제20대 왕
경종 이윤
나이 35세
재위기간 4년
사망원인 급사

조선의 제20대 왕(재위 1720∼1724).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재위 동안은 노론, 소론 당쟁의 절정기였다. 자식이 없고 병약하여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세제(영조)로

책봉하였고 노론의 압박으로 물러날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다.

 

이후 소론의 지지로 다시 친정했으며 김창집 등 노론 4대신 등 노론 세력을 숙청한 신임사화가 있었다.


경종은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4년간 짧은 재위기간을 가진 왕이다.   
어려서부터 경종은 쇠약했었고 심한 우을증(실록에는 괴이한 질병이라고만 나옴)을 앓았다고 기록되있다.   

 

이후 영조가 올린 게장과 생감을 먹고 다음날 급사하였다.   
게장과 생감은 정말 상극인 음식으로 경종이 독살당했다라는 의혹에 불을 지피는 꼴이되었다.   

 

현대의학에서는 경종이 붕어 한달전에 장티푸스에 걸렸는데

이때 잘못된 음식(게와 생감)을 먹는바람에 합병증으로 붕어했다라는 주장이 있다.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 이금 
나이 81세
재위기간 51년 (재위 1724~1776)
사망원인 자연사

조선후기 제21대(재위:1724~1776) 왕. 이름은 이금(李昑), 자는 광숙(光叔), 호는 양성헌(養性軒).

숙종의 세 아들(景宗·英祖·延齡君) 중 둘째이며,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이다.

비는 서종제(徐宗悌)의 딸 정성왕후(貞聖王后)이고, 계비는 김한구(金漢耉)의 딸 정순왕후(貞純王后)이다.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장수했고 재위기간도 가장 길다.
장수의 비결은 소식을 했으며 잡곡밥을 주로 먹었으며 몸에 좋은 음식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영조는 역대왕들중 가장 많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숭정원의 일기에만 무려 140번이 기록되있다.   
1년에 한번씩 받았다고 해도 140년이 걸리는데 영조는 1년에 몇번씩은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은셈이다.   

 

또한 1년간 먹은 인삼의 수만해도 20개가 넘는다고 하니

한달에 한번씩 인삼을 먹는다해도 12개인데 한달에 몇개씩은 먹은셈이다.   

 

그렇게 장수로 살다 자연사했다.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 이산  
나이 47세
재위기간 24년 (재위 1776~1800)
사망원인 등창, 홧병

조선후기 제22대(재위: 1776~1800) 왕.  이름은 이산(李祘). 자는 형운(亨運), 호는 홍재(弘齋).

영조의 둘째아들인 장헌세자(莊獻世子, 일명 思悼世子)와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비(妃)는 청원부원군(淸原府院君)김시묵(金時默)의 딸 효의왕후(孝懿王后)이다.


실록에 기록된 정조의 공식사인은 등창이나 독살설이 굉장히 자주 언급되는 왕이다.   

 

암살론자들은 오회연교 등 정치적으로 격한 상황에서 정조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지고 
첫날에는 연훈방 처방으로 효과를 보았다고 스스로 언급한 다음  이어서 연훈방을 처방했을 때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사실상 급사해버렸기 때문에 독살설 떡밥이 더욱 맹렬한 것 .

 

그러나 저건 그냥 설일뿐이고 양력 1800년 5월 30일에는  정조는 대전에서 신하들과 또다시 한바탕 논쟁을 벌였고,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오늘부로 난 신하들과 일체 논의를 하지 않겠다!!" 고 폭탄선언을 한다.  


그리고 약 4주 뒤인 1800년 6월 28일, 정조는 붕어하기 직전에 벌어진 신하들과  역대 최고 갈등때문에 생겨난

극심한 스트레스가 정조가 이미 가지고 있던 질병을 악화시켜 1달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물론 실록에는 공식사인으로 등창이라 적혀있지만 그 외에 잔병들도 많이 적혀있다. 

 

1800년 6월에 49세의 나이로 죽자 그의 유언대로 융릉 동쪽 언덕에 묻혔다가

그의 비 효의왕후가 죽으면서(1821) 현륭원 서쪽 언덕에 합장되어 오늘날의 건릉(健陵)이 되었다.

 

시호는 문성무열성인장효왕(文成武烈聖仁莊孝王)이다.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1899년에 황제로 추존되어 선황제(宣皇帝)가 되었다.

 

조선의 제23대 왕
순조 이공
나이 44세
재위기간 34년 (재위 1800~1834)
사망원인 패혈증, 변비

조선의 제23대 왕(재위 1800~1834).

김조순 및 외가 인물들의 권력 강화에 맞서 선왕의 여러 정책을 모범으로 국정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다.

 

암행어사 파견,《만기요람》편찬, 국왕 친위부대 강화, 하급 친위 관료 육성 등의 방식으로

국정을 파악하고 국왕의 권한을 강화하려 했다.


순조는 소화기간이 좋지않아 변비로 많은 고생을 한 왕이다.   
순조 34년에 두통과 함께 변비가 찾아오자 결국 이것때문에 붕어하고 말았다.   

 

순조는 정치에 큰 뜻도 없었고 결국 안동김씨들이 권력을 차지하며 60년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조선의 제24대 왕
헌종 이환
나이 21세
재위기간 14년 (재위 1834∼1849)
사망원인 폐결핵

조선의 제24대왕(재위 1834∼1849).

8세에 즉위하여 순조의 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수렴청정하였다.


헌종은 역대왕들중 가장 잘생겼다는 평가를 받는 왕으로  
어릴때부터 궁녀들과 잦은 섹스를 하다 폐결핵에 걸려 붕어했다.   


특이한점은 어진에 나와있듯이 이마에 점이 있었는데 

외할아버지도 똑같이 이마에 점이 있는걸로 영향을 받은듯 하다.  

 

조선의 제25대 왕
철종 철종
나이 32년
재위기간 14년 (재위 1849~1863)
사망원인 폐결핵

조선왕조 제 25대 왕(재위 1849~1863).

1844년 가족과 함께 강화에 유배되었다가 1849년 궁중에 들어와 헌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1852년부터 친정을 시작했으나 정치에 어둡고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전횡으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다.

 

일자무식에 강화도령으로 유명한 왕이나  
철종은 강화도에서 5년밖에 살지 않았고 글을 아예 모르는 까막눈도 아니였다.  


다만 안동김씨의 훼방질을 이기지 못하고 정사를 멀리하고 술과 여색을 탐하다 폐결핵에 걸려 붕어했다.   
헌종대에 인조부터 내려오던 직계혈통들이 모두 끊겨 어쩔수 없이 철종이 왕위에 오를수 있었다.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 이희 
나이 67세
재위기간 43년 (재위 1863∼1907)
사망원인 뇌일혈

조선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제1대 황제(재위 1863∼1907).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세력다툼 속에서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내정 간섭을 겪었다.

 

개화, 수구의 양파가 대립하였고, 병자수호조약, 한·미, 한·영수호조약 등이 이루어졌다.


고종이 붕어할때는 의문점들이 많아 독살설이 굉장히 많이 제기된다.

조선총독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뇌일혈이라고 발표했지만, 이완용의 명령에따라 고종에게

식혜를 전달했던 나인들 두명이 의문사했고 고종은 이 식혜를 먹고 붕어하였다는것이다.   

 

윤치호의 일기에서도 팔다리가 심하게 부어있었고 치아가 빠져있다고 기록되어있다.   

 

당시 고종의 비밀리에 해외망명을 추진하던 중이였으므로 더욱 독살설은 탄력을 받게된다.   
그러나 실제로 확인되거나 확정된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장 확인을 할려면 무덤을 파내야 하는데 여론이 허락할리 없다.  
독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는 당연히 이완용으로 거론되고 있다.  


고종이 일제에게 독살당했다라는 소문이 조선팔도로 쫙 퍼지자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선의 제27대 왕
순종 이척
나이 52세
재위기간 3년 (재위 1907 ~ 1910. 8)
사망원인 심장병

조선의 제27대 왕(재위 1907 ~ 1910. 8)이자 대한제국 최후의 황제.

한일신협약을 체결했고, 이에 따라 일본인의 한국 관리(官吏) 임용을 허용하여

사실상 국내정치는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일본의 압력으로 한국군을 해산하였으며, 경제권·경찰권·군사권 등을 상실하게 되었고,

결국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와 함께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1907년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고종이 이완용과 일제로부터 강제퇴위 당하자 허수아비로 옥좌에 앉게되었다.  

 

원래 한일병탄조약 각서에는 일왕과 순종이 서명과 어새의 날인이 필요한 '조칙'을 내리기로 했는데  
조약서에 국새를 찍었는데 조서에는 찍지 않았으므로 효력이 없다고 한다.  

 

지금 와서 효력이 없었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지만, 일본이 절차와 형식을 무시하고 그들의 뜻대로

병탄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마저 순종의 황후였던 순정효황후가 치마속에 옥새를 숨겼으나,

백부였던 윤덕영이 강제로 빼앗아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무기력속에서 살다가 말년에는 심장병을 앓다 붕어하였다.   


그래서 터진게 3.1운동의 시즌2라고 할 수 있는 6.10 만세운동이지만

3.1운동처럼 전국적으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요약]  조선의 임금들은 평균적으로 23세에 즉위  평균 재위 기간은 19년 2개월 평균 수명은 만 46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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